10여년 초등학교 교사 생활을 해왔지만 호주 초등학교의 독서 지도법을 알게 되면서 느낀 게 많다. 이곳 초등학교에서는 저학년 학부모들이 교대로 학교에 나와 아이들의 글 읽기를 지도해주는데 나 역시 지난해 8월초 딸의 교실을 찾아갔다. 한 아이를 앞에 두고 따라 읽게 하기, 낱말 풀이 등 외국인 처지로 내 딴에는 정성을 다했다. 하지만 담임선생님은 미묘한 표정이었다.
나는 기분이 조금 상했는데 방과 후 선생님과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다. 담임은 “단순하게 읽기 지도만 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표지 그림 속의 사람 풍경 색상 등에 대해 아이들 생각을 물어보고, 책 내용이 어떻게 전개될 지 이야기해보라는 것이다. 다 읽은 후에는 아이 나름대로 또 다른 이야기 내용을 구성해보도록 이끌어보라는 것이다. 어느 세월에 책 한권한권을 그렇게 한단 말인가. 나는 홀로 한숨을 내쉬었다.
아이의 책 읽기 지도를 놓고 나의 ‘시련’은 거듭됐다. 우리 아이들의 학교에는 매주 두차례 교장선생님의 학급별 책 읽어주기 시간이 있다. 교장선생님은 읽기를 마친 후 독서 내용을 생각해가며 그림그리기 종이접기 숫자놀이(저학년) 토론회(고학년)를 직접 마련한다. 중간중간 손장난 놀이나 노래하기도 직접 한다. 딸아이는 “미스터 맬러(교장선생님)는 너무너무 재미있다”고 한다. 그런데 교장선생님은 집에서도 학부모들이 자신과 비슷한 방식으로 아이들의 책 읽기를 지도해주길 권유하고 아이들에게 가끔 이를 확인한다. “할 일 없으면 책이나 읽어”라고 소리치는 데만 익숙한 나로서는 이 권유에 응하느라 ‘죽을 맛’이다.
그뿐인가. 1학년부터 4학년까지는 매일 교내 도서관에서 1권 이상 책을 빌려야 하며 주 1회 읽은 내용을 발표하기도 한다. 아이들이 발표 내용을 써놓으면 나는 이를 사전에 점검, 정리해주어야만 하게끔 돼있다.
학부모의 읽기 지도 의무는 방학에도 이어진다. 방학이 되면 지역도서관은 학교측과 협의해 하루 3시간, 주 2회의 독서 강좌를 마련한다. 학부모는 반드시 참석해야 한다. 현재 여름방학중인 딸아이는 갖가지 이벤트를 동원한 강사들의 현란한 수업에 푹 빠져 있지만 나는 개학 때 딸과 공동 명의로 담임선생님에게 제출해야 하는 강의 내용을 일일이 써놓느라 진땀을 흘리고 있다. 호주로 와서 좀 편해지나 했는데 방학 기간마저 아이들 책 읽기 지도로 송두리째 헌납해야 하다니…. 나는 매일 파김치가 돼간다. 어디서나 학부모 역할은 쉽지 않나 보다.
김옥자(서울 반원초등학교 교사·휴직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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