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에서 길러보니]호주,학부모 참여'눈높이 독서지도'

  • 입력 2002년 1월 22일 16시 22분


지난해 여름 유학에 나선 남편을 따라 아이 둘을 데리고 호주 서부의 퍼스로 건너왔다. 아들이 초등학교 6학년, 딸이 1학년이다.

10여년 초등학교 교사 생활을 해왔지만 호주 초등학교의 독서 지도법을 알게 되면서 느낀 게 많다. 이곳 초등학교에서는 저학년 학부모들이 교대로 학교에 나와 아이들의 글 읽기를 지도해주는데 나 역시 지난해 8월초 딸의 교실을 찾아갔다. 한 아이를 앞에 두고 따라 읽게 하기, 낱말 풀이 등 외국인 처지로 내 딴에는 정성을 다했다. 하지만 담임선생님은 미묘한 표정이었다.

나는 기분이 조금 상했는데 방과 후 선생님과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다. 담임은 “단순하게 읽기 지도만 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표지 그림 속의 사람 풍경 색상 등에 대해 아이들 생각을 물어보고, 책 내용이 어떻게 전개될 지 이야기해보라는 것이다. 다 읽은 후에는 아이 나름대로 또 다른 이야기 내용을 구성해보도록 이끌어보라는 것이다. 어느 세월에 책 한권한권을 그렇게 한단 말인가. 나는 홀로 한숨을 내쉬었다.

아이의 책 읽기 지도를 놓고 나의 ‘시련’은 거듭됐다. 우리 아이들의 학교에는 매주 두차례 교장선생님의 학급별 책 읽어주기 시간이 있다. 교장선생님은 읽기를 마친 후 독서 내용을 생각해가며 그림그리기 종이접기 숫자놀이(저학년) 토론회(고학년)를 직접 마련한다. 중간중간 손장난 놀이나 노래하기도 직접 한다. 딸아이는 “미스터 맬러(교장선생님)는 너무너무 재미있다”고 한다. 그런데 교장선생님은 집에서도 학부모들이 자신과 비슷한 방식으로 아이들의 책 읽기를 지도해주길 권유하고 아이들에게 가끔 이를 확인한다. “할 일 없으면 책이나 읽어”라고 소리치는 데만 익숙한 나로서는 이 권유에 응하느라 ‘죽을 맛’이다.

그뿐인가. 1학년부터 4학년까지는 매일 교내 도서관에서 1권 이상 책을 빌려야 하며 주 1회 읽은 내용을 발표하기도 한다. 아이들이 발표 내용을 써놓으면 나는 이를 사전에 점검, 정리해주어야만 하게끔 돼있다.

학부모의 읽기 지도 의무는 방학에도 이어진다. 방학이 되면 지역도서관은 학교측과 협의해 하루 3시간, 주 2회의 독서 강좌를 마련한다. 학부모는 반드시 참석해야 한다. 현재 여름방학중인 딸아이는 갖가지 이벤트를 동원한 강사들의 현란한 수업에 푹 빠져 있지만 나는 개학 때 딸과 공동 명의로 담임선생님에게 제출해야 하는 강의 내용을 일일이 써놓느라 진땀을 흘리고 있다. 호주로 와서 좀 편해지나 했는데 방학 기간마저 아이들 책 읽기 지도로 송두리째 헌납해야 하다니…. 나는 매일 파김치가 돼간다. 어디서나 학부모 역할은 쉽지 않나 보다.

김옥자(서울 반원초등학교 교사·휴직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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