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기업의 최고경영자(CEO) 가운데는 싱글 핸디캡 골퍼가 적지 않다. 일반인과 비슷한 클럽을 쓰면서도 대부분 장타(長打)를 날리는데다 그린 주변에서의 ‘숏게임(Short-Game)’ 에도 능수능란한 것이 특징.
재계 관계자들은 주요기업 CEO의 경영방식은 골프스타일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입을 모은다. 과감한 샷을 즐기는 기업인은 공격적 경영에 강하고, 정교하고 세밀하게 전략을 세우고 샷을 날리는 이는 관리능력에서 앞선다는 평. 몇몇 대기업 총수는 골프와 경영을 비교해 가며 계열사 사장이나 임직원을 통솔할 정도다.
▽ 타고난 승부사 LG 구본무(具本茂·57) 회장= 핸디캡이 7인 구 회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1등 LG 라는 구호를 내걸고 재도약을 다짐했다. 재계 관계자들은 그의 선언이 필드에서 자주 보여준 승부사적 기질과 맥이 닿아 있다고 분석한다. 그는 평소 “소심한 플레이로 더블 보기를 하는 것보다 과감한 스윙으로 트리플 보기를 하는 것이 낫다” 고 말할 정도로 골프와 경영 모두에서 자신감을 강조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도전하지 않고는 진보가 없고, 최고의 자리에도 절대 오를 수 없다는 것.
특히 그는 4개 홀에서 연달아 버디를 기록했을 정도로 집중력이 탁월한 것으로 유명하다. LG그룹 구조조정본부 정상국 상무는 “실력은 모자라도 괜찮지만 집중력과 성의가 부족하면 꾸지람을 듣게 된다” 며 “하지만 대기업 총수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동반자를 세심하게 배려하는 자상함도 있다” 고 설명했다.
▽ 혁신의 전도사 , 삼성전자 윤종용(尹鍾龍·58) 부회장= 윤 부회장은 삼성전자 구조조정의 핵심에 있었던 인물. 기업에 혁신의 바람을 불어넣기 위해 측근부터 사표를 받아 모범을 보인 경영자로 유명하다. 현재에 만족하면 반드시 또 다른 위기가 다가오기 때문에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 해야 한다는 게 그의 경영철학.
그는 골프에서도 혁신가다운 면모를 보인다. ‘티오프(Tee-off)’ 30분전부터 연습을 시작하고 라운딩이 끝나면 코치를 찾아가 ‘반성’ 을 한다. 그 결과 그는 80% 이상의 홀에서 파온(par-on)에 성공할 정도로 아이언의 정확도가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핸디캡은 12. 지난해 10월에는 안양베네스타CC 17번홀(파3)에서 홀인원을 기록하기도 했다.
▽ 정교함의 대명사 , SK 손길승(孫吉丞·61) 회장= 손 회장은 모든 일을 세밀하게 분석해서 가장 합리적인 대안을 찾아내는 CEO로 꼽힌다. 특히 인간이 달성할 수 있는 최대치를 목표로 설정한 뒤 ‘장애 요인’ 을 하나씩 제거하면서 목표에 다가서는 스타일이다.
골프에서도 그는 특유의 정교함과 분석력을 주무기로 삼고 있다. 일단 라운딩 전 코스를 분석한 뒤 한 타, 한 타를 캐디와 상의해 가며 타수를 줄여나가는 전략. 라운딩을 마친 후에도 결과를 분석해 다음 라운딩 때 반영하는 스타일. 그 결과 53세에 클럽을 처음 잡았는데도 핸디캡은 12에 불과하다. 코스 선정에서부터 음식을 주문하는 것까지 동반자를 세심하게 배려하는 것도 그의 매력으로 꼽힌다.
▽ 스포츠맨십 경영 , 두산 박용오(朴容旿·65) 회장= 박 회장은 라운딩 도중 동반자가 공을 유리한 위치로 슬쩍 옮겨 놓는 것을 가장 싫어한다. 스포츠맨십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거나 규칙을 무시하는 사람은 골프를 즐길 자격이 없다는 게 그의 지론. 또 타구 방향이 정확해 한번 목표가 결정되면 연습스윙 없이 샷을 날리는 과감함도 장점이다. 핸디캡은 6.
두산의 성공적인 구조조정을 박 회장의 골프 스타일과 연결시켜 이야기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위기에 몰린 기업의 탈출 방향을 정한 뒤 과감하게 구조조정을 단행한 결과 두산은 지금 견실한 기업으로 거듭나고 있다.
▽ 몰입형 리더 , 코오롱 이웅열(李雄烈·56) 회장= 코오롱팀의 한국프로골프협회(KPGA) 최광수 프로가 가장 두려워하는 골퍼가 바로 이 회장. 수시로 언더파를 기록하는 이 회장은 드라이버 평균거리도 290 야드나 된다. 미국 유학시절 하루 3000개씩 연습했을 정도로 목표에 도달할 때까지 끊임없이 몰입하는 스타일. 부친인 이동찬(李東燦·80) 명예회장은 대한골프협회 회장까지 지냈다.
이웅열 회장은 회사에서도 비슷하다. 일에 푹 빠져들지 않고는 경쟁에서 앞설 수 없다는 그의 경영철학은 최근 코오롱의 약진을 가능케 한 중요한 배경으로 꼽힌다.
한편 골프를 하지 않는 CEO도 적지 않다. 삼성그룹 이건희(李健熙)회장은 2년전 발목부상 이후 라운딩을 하지 않고 있다. 현대자동차 정몽구(鄭夢九) 회장, 현대산업개발 정몽규(鄭夢奎) 회장, 효성 조석래(趙錫來) 회장, 대한항공 조양호(趙亮鎬) 회장 등은 골프보다는 다른 운동으로 건강을 돌본다.
박정훈기자 sunshad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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