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티앙 디오르 패션점에 들어간 지 2년만인 21세 때 후계자 자리를 물려받을 만큼 일찌감치 천재성을 드러낸 생 로랑은 코코 샤넬과 함께 20세기 패션의 양대 산맥으로 군림했다. 여성에게 ‘르 스모킹’으로 불리는 바지 정장을 처음 입힌 이가 생 로랑이다. 그 후에도 몬드리안 룩, 매니시 룩 등 만드는 것마다 대히트를 쳤다. 향수 광고에 나체로 직접 출연할 만큼 열정적이었던 생 로랑이다. 그랬기에 ‘샤넬이 여성을 코르셋으로부터 해방시켰다면 생 로랑은 패션을 해방시켰다’라는 말까지 나왔다.
▷현대미술관의 대명사처럼 되어 있는 파리 퐁피두센터에서 고별 패션쇼가 열린 것도 그의 입지를 말해주는 대목이다. 콧대 높기로 정평이 난 퐁피두센터도 이브 생 로랑 패션을 20세기 예술의 걸작으로 인정한 셈이 되니까. 이 패션쇼는 초대받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건물 전면에 설치된 대형스크린으로 생중계되기까지 했다니 그를 향한 파리 시민들의 뜨거운 사랑이 놀랍다. 생 로랑은 우리나라로 치면 앙드레 김 정도 될 게다. 앙드레 김이 은퇴한다고 하면 우리도 그들처럼 ‘난리’를 칠까.
▷그런데도 생 로랑은 고독하다고 한다. 명예에, 부(富)에, 뭇 여인의 사랑까지 거머쥐고도 왜 외롭다는 것일까. 아일랜드의 극작가 오스카 와일드는 ‘예술가에게는 표현만이 인생을 인식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했다. 이 말과 생 로랑의 또 다른 한마디를 연결시키면 해답이 나올 것도 같다. “무질서와 퇴폐의 시대에 우아함과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은 많은 슬픔을 느끼게 했다.” ‘거지패션’으로 불릴 만큼 이상한 옷차림, 우아함보다는 경제성을 더 따지는 새 트렌드 속에서 그는 더 이상 설자리가 없음에 절망했을지도 모른다. “여성이여, 자신의 매력에 의지하라”는 그의 마지막 당부는 그래서 더욱 설득력 있게 들린다.
최화경 논설위원 bb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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