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의 창]박이문/소크라테스가 그립다

  • 입력 2002년 1월 25일 18시 27분


국교와 상반되는 믿음을 퍼뜨리고, 젊은이들을 타락시킨다는 이유로 아테네의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국가권력에 의해 고발당했다. 그러나 고발의 숨은 이유는 당시 지배하고 있던 사상을 비판하고 젊은이들의 생각을 일깨워 줌으로써 지배계층의 특권과 그 이념을 위협했다는 데 있었다. 소크라테스는 고발의 이유가 타당치 않다는 것과 아테네를 떠나면 법정에 서지 않고 위기도 넘길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그러한 행동이 자신의 철학적 원칙에 위배된다는 이유로 법정에서 당당히 재판 받는 길을 선택했다.

▼죽음보다 못한 '원칙없는 삶'▼

소크라테스는 사형선고가 내려진 후에도 잘못은 자신이 아니라 국가와 재판관들의 판정과 그런 판정을 지지한 사람들에게 있다는 것을 확신했고, 자신이 죽은 후 가난한 아내와 자식들이 겪어야 할 고통을 고려해야 할 가장으로서의 도덕적 의무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또 그는 양심의 가책 없이 제자들의 주선으로 당국의 암묵적 승인하에 다른 나라로 빠져나갈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가정에 대한 사적 의무보다 국가의 법에 대한 공적 의무가 선행한다는 자신의 철학적 소신에 따라 제자들의 간곡한 마지막 설득도 거부하고 태연히 독약을 마셨다. 스승의 굳어지는 몸을 바라보며 마지막으로 할 말을 묻는 애제자 크리토에게 그는 “크리토 군! 내가 이웃집 사람 아스크래피우스에게 수탉 한 마리를 빚졌으니 잊지 말고 꼭 갚아 주게나”라는 대답을 남기고 눈을 감았다.

누구에게나 권력과 치부는 탐욕의 대상이며, 생존은 가장 원초적 본능이다. 그런 것들은 자체로서 나쁘지 않은 소중한 가치들이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보다 더 소중한 것은 도덕적 원칙이다. 원칙은 규범이며, 규범은 이성의 산물이며, 이성은 자유를 전제로 한다. 인간만이 자유롭고, 이성을 소유하며 규범을 만들고 원칙에 따라 살 수 있다. 원칙 없는 인간은 인간이 아니라 그냥 동물이며, 원칙 없는 삶은 인간적 삶이 아니라 그냥 동물적 삶이다. 돈과 권력만이 아니라 생존마저도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니다. 그것들은 도덕적 원칙에 배치되지 않게 획득된 경우에만 가치로서 존재할 수 있다. 원칙에 위배된 부, 권력, 생존은 원칙에 맞는 빈곤, 무력, 죽음보다 못하다. 원칙에 따른다는 것은 자신의 소신과 일관성을 갖고 살아감을 뜻하고, 자신의 원칙에 맞게 산다는 것은 자신에게 정직함을 의미하며, 자기에게 정직하다는 것은 자기 정체성의 다짐을 함의하고, 자기 정체성의 다짐은 자기 존재의 확인을 뜻한다. 인간의 경우, 원칙 없는 삶은 죽음과 다름없고, 원칙 없는 인간의 존재는 더 이상 인간으로서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의 옳고 그름을 떠나서 원칙 없는 삶은 인간적 삶이 아니기 때문이다.

철학적 소신에 따라 감옥에서 도망가기를 끝까지 거절하고 죽음을 택한 소크라테스는 모든 인류의 가슴 속에 ‘가장 현명한 인간’으로 영원히 살아 있지만, 그를 사형에 처한 아테네의 권력자들은 이름도 남기지 못하고 죽었다. 정치적 소신에 따라서 나치로부터 프랑스를 지키고 그 후 2번이나 위기에 처했던 조국을 수습한 대통령으로서 ‘국부’로 추앙 받았지만 국민이 자신을 더 이상 지지하지 않는 것을 알았을 때 일언반구의 변명이나 원망은 물론 미련도 없이 대통령 관저를 떠났던 샤를 드골은 프랑스 역사에 길이 살아 있지만, 그를 몰아낸 프랑스 정객들의 이름을 기억하는 이는 별로 없다. 자신의 실존적 소신에 따라 더 이상 사랑하지 않게 된 과거의 애인 호세에게 사랑한다고 거짓말하기보다는 오히려 그의 칼에 찔려 죽기를 선택한 집시 여인 카르멘은 문학 속에서 모든 남자들의 마음 속에 뜨겁게 살아 남았지만, 권력과 부귀를 따라 사치스럽게 살았던 과거의 미희들이나 오늘날의 수많은 여인들은 어느 남자의 상상 속에서도 아름답게 존재하지 않는다.

▼소신있는 사람 보고싶어▼

그 구체적 내용에 동의할 수 있고 없는가의 문제를 떠나, 원칙 있는 삶은 고귀하다. 정당을 식은 죽 먹듯 바꾸고 권력 앞에서 줄서기를 일삼는 정치가들, 막대한 재산을 축적한 몇몇 과거의 최고 권력자들, 수많은 게이트 사건에 연루된 행정부 검찰의 실권자들만이 아니다. 종교 학술 문화 등 모든 분야와 계층의 적지 않은 인사들의 행동을 냉정히 바라볼 때 분노와 개탄, 규탄과 측은지심이 교차함을 억제할 수 없다. 그럴수록 소크라테스, 드골, 카르멘이라는 이름들이 머리에 떠오른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가장 아쉬운 것은 우리의 소크라테스, 드골, 카르멘이다.

박이문 미국 시몬스대 명예교수·철학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