咬-씹을 교 寤-잘깰 오 寐-잠잘 매
柴-땔나무 시 扉-사립문 비 粗-거칠 조
신분상의 富貴(부귀)와 물질적인 富庶(부서)가 함수관계를 지니는 것은 東西古今(동서고금)이 다르지 않다. 그래서 돈을 벌거나 高官에 오르고 나면 바로 물질적인 豊饒(풍요)로 이어졌으며 가장 먼저 나타나는 것이 衣食住(의식주)의 변화였다. 자연히 衣食住를 통해 그 사람의 富貴나 富庶를 짐작하는 것도 그리 어렵지 않았다.
과연 好衣好食(호의호식)과 高樓巨閣(고루거각)은 우리 조상들이 寤寐不忘(오매불망·자나깨나 잊지 못함)그렸던 꿈, 그래서 비단 옷 입고 이밥에 고깃국 먹으면서 고래등같은 집에 사는 것이야말로 인생 최고의 幸福(행복)이 아니었던가? 자연히 그 반대의 경우인 布衣惡食(포의악식·베옷에 거친 밥을 먹음)과 柴扉茅屋(시비모옥·사립문에 띠를 얹은 지붕)은 貧寒(빈한)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例外(예외)도 없지 않았다. 지난 번 ‘曲肱之樂’(곡굉지락)에서 보았듯 옳지 못한 富貴를 糞土(분토)로 여기면서 聖人(성인)의 道(도)를 좇아 所謂(소위) 安貧樂道(안빈낙도)의 삶을 즐겼던 분도 적지 않았던 것이다. 물론 凡人은 아니었을 것이다.
사실, 여러 아픔 중에 ‘없는 고통’이 작지 않다 했거늘 가난을 八字로 여기고 나물밥에 냉수로 목을 축이면서도 ‘樂亦在其中’(낙역재기중·즐거움이 그 가운데에 있음)이라고 超然(초연)해 할 사람이 과연 우리 같은 凡人중에 무릇 幾何(기하·얼마)이리요?
‘菜根’은 글자 그대로 ‘채소의 뿌리’. 감자, 고구마라면야 또 모르겠으되 나머지는 그다지 먹을 것이 못된다. 하기야 배고팠던 시절, 배추뿌리도 먹기는 했지만 어디 그게 ‘맛’이었으랴? 그래서 ‘菜根’에는 ‘粗食’(조식·보잘 것 없는 음식)이라는 뜻도 가지고 있다.
宋의 學者(학자) 汪革(왕혁·字 信民)은 성격이 강직하고 篤實(독실)한 데다 재주가 넘쳐 부르는 곳이 많았음에도 일체 응하지 않고 평생을 儉素(검소)하게 살다 간 인물이다. 그가 입버릇처럼 했던 말이 있다. ‘咬得菜根, 百事可做’(교득채근, 백사가주)-채소 뿌리를 씹을 각오가 되어 있다면 못 할 일이 없다.
즉 뒤가 켕기는 사람이야 한 밤 쥐새끼 소리에도 기겁을 하지만 物慾(물욕)에 眩惑(현혹)되지 않은 사람은 태산이 무너지고 눈앞에서 고라니가 뛰어도 꿈쩍하지 않는다. 후에 ‘咬菜根’(채소 뿌리를 씹음)은 淸貧한 생활을 뜻하기도 하였다. 非理(비리)로 줄줄이 구속되는 것을 보면서 생각해 보았다.
鄭 錫 元 한양대 안산캠퍼스 교수·중국문화
sw478@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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