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트 상품들은 그런 소비자들의 마음을 제대로 포착하고 사로잡을 때 탄생된다. 소비자들의 ‘변덕’을 따라가는 작업이 바로 마케팅이다. 하나의 히트 상품이 태어나기까지의 과정에는 마케팅 담당자들의 숱한 땀과 아이디어가 녹아 있다.
▽성공과 실패의 열쇠〓동일한 제품의 운명이 ‘마케팅의 손길’에 따라 어떻게 엇갈렸는지를 보여주는 사례가 롯데제과의 자일리톨껌이다. 97년 ‘자일리톨F’라는 이름으로 처음 선보인 이 제품은 ‘달고 맛있으면서도 충치를 예방하는 무설탕 껌’이라는 이미지를 들고 나왔다. 당시 제품 자체는 시장에서 팔릴 만한 조건을 충분히 갖고 있었다. 건강에 대한 관심에다 때마침 ‘프리미엄 제품’ 바람까지 불고 있었다.
그러나 제품이 좋다고 소비자들이 그냥 알아주는 건 아니었다. 이 회사 김용택 마케팅 상무는 “마케팅을 제대로 하지 않아 고급 껌이라는 이미지를 전달하는 데 실패했다”고 털어놓았다. 가격만 터무니없이 비싼 껌으로 취급돼 가게 주인들도 외면하는 천덕꾸러기가 됐다. 결국 6개월 만에 철수된 자일리톨의 목숨을 되살려준 것은 편의점인 세븐일레븐에 써 붙인 ‘자일리톨이 500원이어야 하는 이유’라는 간단한 광고판이었다. 차별화된 이미지를 몇 줄의 문구에 담아 설명하자 자일리톨껌의 진가가 소비자들에게 파고든 것이다. 매출이 서서히 뜨면서 재기의 발판이 마련됐다.
롯데는 실패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 2000년 자일리톨껌을 다시 시장에 내놓으면서 치밀한 전략을 폈다. 법적으로 식품의 효능을 광고할 수 없다는 핸디캡을 구전 효과와 매체를 통한 간접 홍보로 치고 나갔다. ‘충치예방효과’에 거부감을 갖는 치과의사들을 설득하는 작업까지 병행했다.
작년 1년간 자일리톨껌은 1009억원 어치가 팔려 제과업계 단일 품목으로 연매출 1000억원을 처음 넘었다. 그 여세를 몰아 최근엔 업그레이드된 자일리톨껌인 ‘자일리톨+2’를 내놓았다.
김 상무는 “자일리톨로 내 마케팅 경력에서 지옥과 천당을 모두 겪은 셈”이라고 말했다.
▽소비자의 숨결을 느껴라〓‘히트 상품 제조기’로 불리는 태평양 이해선 전무는 자신의 몸이 ‘상품 실험실’이다. 손톱은 요즘 빨간 색으로 물들여져 있다. 머리에 염색약을 바르고 입술에 립스틱을 칠해 보기도 한다. 이렇게 자기 몸을 도구로 제품을 테스트해 보면서 그는 판매자가 아닌 ‘소비자’가 된다. 제일제당에서부터 빙그레를 거치는 동안 ‘비트’ ‘식물나라’ ‘헤라’ 등 수많은 히트작을 내놓은 데는 이런 실험정신이 숨어 있었다.
그는 제품 하나를 내놓을 때마다 사전 시장조사를 수없이 반복한다. 시장조사는 그에게 마케팅의 출발이다. 하지만 그는 그 결과를 그대로 믿지는 않는다. 통계수치 이면의 ‘진실’을 포착하기 위해 직접 현장으로 뛰어든다. 점포에 나가 소비자들의 세세한 기호를 직접 보고 들어야 ‘감’이 잡힌다. 직원들에게 “가정집 안방의 화장대 모습을 사진 찍어 오라”고 하는 것도 그런 ‘현장 제일론’에서 비롯됐다.
‘종가집 김치’를 맡고 있는 두산 김인수 부장도 수많은 마케팅 서적을 섭렵하면서도 ‘쓰레기통 속의 포장지 비율이 진짜 제품 점유율’이라고 믿는 데선 역시 현장주의자다.
90년대 ‘빙과업계의 전설’로 불리는 빙그레의 ‘메로나바’도 소비현장의 작은 단서를 놓치지 않은 결과였다. 대구지방의 한 제과점에서 200원짜리 아이스크림 바를 파는 것에서 힌트를 얻은 이 제품은 빙과업계에서 ‘마의 고지’였던 연매출 100억원을 두 배 이상 넘었다.
메로나의 주역으로 지금은 샘표식품으로 옮긴 송동수 이사는 ‘숨쉬는 콩된장’으로 히트 퍼레이드를 이어가고 있다.
▽소비자보다 똑똑해야〓그러나 때로는 소비자에게 ‘속지’ 말아야 한다. 1980년대 중반 코카콜라는 펩시에 밀리자 ‘뉴코크’라는 브랜드를 전격적으로 내놓았다. 10억달러 이상의 마케팅 비용을 들인 시장조사와 컨설팅 결과는 대성공을 장담했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연 결과는 대실패였다. 디즈니랜드는 정반대였다. 사전조사에선 “누가 그 멀리까지 놀이기구를 타러 가겠느냐”는 부정적 반응이 나왔지만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소비자 자신도 자신의 기호가 뭔지 잘 몰랐던 것이다.
김인수 부장은 그래서 “마케팅에는 정답이 없다”고 말한다. 송동수 이사는 “마케팅에는 ‘독수리의 눈과 곤충의 눈’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즉 높은 데서 조망하며 트렌드를 보는 눈과 밑에서 세세한 것을 포착하는 눈이 겸비돼야 한다는 뜻. 소비자의 마음을 가져야 하지만 때론 소비자보다 ‘똑똑해야’ 한다는 얘기다.
이명재기자 mjlee@donga.com
김승진기자 sarafin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