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눈]심규선/재일동포 배려는 끝났다

  • 입력 2002년 1월 27일 18시 28분


일본 경찰에는 흔히 ‘3개의 성역’이 있다고들 한다. 조직폭력배인 ‘야쿠자’, 공명당의 모체이자 종교단체인 창가학회, 그리고 재일조선인총연합회(총련)가 그것이다. 이들 단체에 대해선 명명백백한 범법행위가 있지 않는 한 ‘긁어 부스럼 만들기’ 십상인 수사는 않는 게 좋다는 관행적 묵계 같은 것이 있다.

‘3개의 성역’에 총련이 들어간 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일본은 ‘가해자’이고 총련은 ‘피해자 단체’이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로서도 일제의 징병·징용으로 끌려와 일본에 주저앉게 된 ‘피해자’들을 원리 원칙대로 다루기가 왠지 켕겼던 것. 한국계 재일동포나 한국민단에 대해서도 같은 설명이 가능하다.

그러나 일본 정부의 이런 ‘배려’는 이제 끝난 것으로 보인다. 일본 경찰은 지난해 11월 총련 중앙본부에 대한 압수수색을 단행했고 이달 25일에는 재일동포의 ‘대부’인 이희건(李熙健·84) 전 간사이(關西)흥은 회장을 전격 구속했다. 옛날 같으면 상상하기 어려웠던 일이다. 수사와 구속과정에서 일본 정부가 ‘배려’에 대해 논의했다는 흔적조차 없다.

변한 기류(氣流)는 일본의 역사인식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대다수 일본인들은 이제 과거사 문제는 매듭을 지었다고 믿는다. 더 이상 과거에 구애받을 필요가 없으며 따라서 한인사회의 문제를 다룰 때도 ‘역사’가 고려사항 중의 하나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재일동포들도 이제는 인식을 바꿀 때가 됐다. ‘피해자’라는 사실에 기대기보다는 법적 도덕적으로 흠잡히지 않아야 한다는 얘기다.

물론 우리 시각에선 과거사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다. 이번 사건의 이면에는 총련계와 민단계 신용조합에 대한 공적자금 투입을 앞두고 일본 사회의 반발을 무마하기 위한 ‘표적 수사’의 의혹도 있다.

그러나 명백한 불법행위 앞에서 역사는 더 이상 피난처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되새기는 것이 궁극적으로 한인사회에 더 도움이 되지 않겠는가.

심규선 도쿄특파원 kssh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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