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9·11테러가 있은 지 얼마후의 일이다. 미국 로스앤젤레스 공항에 비행기가 착륙하자마자 뒷좌석에 앉아 있던 한국인 승객들이 무엇에 쫓기기라도 한 듯이 급히 내리려고 하는 것이었다. 이를 옆에서 본 외국인 승객들은 무슨 큰일이라도 났나 하며 어리둥절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매우 익숙한 광경임에도 불구하고 테러의 여파 때문인지 큰 당혹감을 느꼈다. 항공기가 착륙한 후 완전히 정지하기 전 미리 좌석에서 일어나 가방을 챙기거나 이동하는 것은 승객 자신의 안전을 위해서도 지양되어야 할 일인데 아직까지 정착되지 않고 있다.
월드컵의 해를 맞아 어느 때보다도 많은 외국인들이 한국을 찾을 것이며 대외적인 우리나라의 이미지를 개선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다. 항공기를 이용하는 경우에도 정해진 룰을 지키는 페어플레이를 통해 한국의 이미지를 제고했으면 한다.
우리 승객들은 대체로 혼자일 때는 조용한 편이나 단체일 때는 군중심리 때문인지 시끄럽고 말썽도 많이 생긴다. 특히 일행과 함께 앉아 가려고 자리를 바꾸기 위해 큰 소리로 소란을 피우는 경우가 잦다. 꼭 자리를 옮겨야 한다면 우선 자신의 좌석에 먼저 착석하고 모든 승객이 탑승한 후 빈자리가 있을 경우에 한해 승무원에게 요청해 좌석을 바꾸면 되는데 이것이 잘 지켜지지 않고 있다.
술과 담배 역시 빠지지 않는다. 기내에서 서비스하는 술이 공짜라고 마구 마시며 만취하는 승객이 가끔 있다. 항공기는 1만m 이상 고공을 비행하므로 기압이 지상보다 낮다. 이럴 경우 술에 취하는 속도가 평소보다 두 배 빠르므로 기내에서 음주할 때는 절제가 요구된다. 또한 기내에서는 흡연이 엄격하게 금지되어 있다. 그런데도 종종 통로나 화장실에서 담배를 피우는 승객들을 발견한다. 승무원이 정중히 만류해도 오히려 역정만 낸다. 또 좌석 등받이를 너무 뒤로 젖혀 식사 중인 뒷좌석의 승객이 음료와 음식물 세례를 받는 것을 종종 보면서 안타까움을 느낀 적도 여러 번 있다. 이 모두 남을 배려하는 마음, 페어플레이 정신이 부족해서 일어나는 일이 아닐까.
항공기 안은 여러 나라의 사람들이 함께 모여 있는 공간이기 때문에 나라별 국민의식 수준이 평가된다. 월드컵을 맞아 세계 각국에서 오는 손님들이 항공기내에서부터 우리의 수준을 평가할 것이다. 올해에는 기내에서 좀 더 남을 생각하는 승객들을 모시고 즐거운 비행을 하게 되기를 간절히 기대해 본다.
조현수 대한항공 승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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