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념(경제부총리) 강봉균(전 재정경제부장관) 정건용(산업은행 총재) 김진표(신임 대통령정책기획수석) 이용근씨(전 금감위원장) 팽동준(전 예금보험공사 이사)). 모두 정부나 정부산하기관을 책임지고 관련 정책을 짜는 인물들이다. 그런데 그들의 아들이나 딸, 또는 그 자신(이용근)이 이들 기관으로부터 무더기로 용역을 수주한 아서앤더슨의 임원으로 일한다. 특히 이 회사는 ‘공교롭게도(?)’ 정부산하기관의 용역을 움켜쥐면서 급성장했다.
너그럽게 이 모든 것을 우연의 일치로 봐넘길 수도 있다. 하지만 너그러워지기엔 너무 기막힌 우연이고, 지극히 ‘한국적인 우연’이다. 가령 용역을 준 정부 실무자가 자신이 모시는 상사의 자제들이 일하고 있는 회사를 다른 회사처럼 ‘객관적으로’ 대할 수 있을까.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일반인들은 그렇게 봐줄까. 그런 상식적 추론을 따라가다 보면 우연은 ‘필연’의 심증으로 굳어진다.
아서앤더슨과 같은 사례는 빙산의 일각일 수도 있다.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지, 이런 식의 ‘우연’은 사회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을 것이다.
어쩌면 진짜 문제는 고위인사 자제들의 개운찮은 취업에 있는 게 아니다. 오히려 그런 처신에 문제가 있다는 걸 자각하지 못하는, 또는 무시하려 하는 무딘 윤리의식인지 모른다. 한국사회의 고질들이 하늘에서 떨어진 게 아니라면 부패란 이런 식으로 가랑비에 옷 젖듯 서서히 찾아오는 건지도 모른다.
‘참외밭에선 신발을 고쳐 신지 말라’는 속담이 주는 교훈을 스스로에게 되새겨볼 일이다.
이명재기자 mj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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