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배우가 될 수 있는 0.1%의 확률도 미국에서 벤처기업이 성공하는 비율에 비하면 대단히 ‘너그러운’ 것이다. 이 나라에서 아이디어가 사업으로 연결돼 나스닥에 등록되기까지 살아남을 확률은 100만분의 6(월스트리트 저널)이다. 이것은 앉아서 밥 잘 먹다가 그냥 죽는 비율, 야구장 밖으로 날아온 공에 자동차 유리가 깨질 가능성, 우주에서 떨어진 운석 파편에 맞아 지구상의 동물이 급사할 확률과 유사하다. 수치상 미국땅에서 벤처로 사업을 일군다는 것은 이처럼 가능성이 희박한 일이며 이 말은 거꾸로 나스닥에 등록된 기업들은 그만큼 어려운 검증과정을 겪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어떤가. 정부가 선두에 서서 ‘벤처만이 살길’이라며 온갖 지원을 해대는 통에 한때 어중이떠중이 벤처의 탈을 쓴 기업들이 세상을 덮은 적이 있다. 벤처는 말 그대로 모험기업이어야 하는데 수준 낮은 당국자들의 온실속 보호 정책 때문에 국산 벤처는 뿌리가 허한 수경재배 식물의 꼴이 되었다. 자생력 약한 벤처를 양산하는 바람에 2000년도에 우리 국민의 절반(가구 기준)이 코스닥시장에서 투자액 기준 절반 이상을 잃고 쪽박을 찬 기록이 있다.
▷애석하게도 우리나라 벤처신화의 주역이던 메디슨이 최근 부도를 내고 법정관리의 길을 모색하는 신세가 됐다. 경영하는 시간보다 성공사례 강연을 하는 시간이 더 많았을 법한 ‘청년기업인’ 이민화는 한때 시가총액이 5000억원에 달했던 회사를 몰락시킨 주인공으로 전락했다. 정부가 깔아 놓은 과보호의 멍석 위에서 그는 ‘벤처연방론’을 내세우며 문어발식 사업확장에 나섰는데 이 이론은 경제학적으로 깊이 있게 연구된 것이라기보다 구시대 재벌의 악습을 복사한 데 불과했다. 명예추구 부동산투자 문어발경영 등 망하는 기업이 갖추어야 할 모든 것을 완벽하게 갖춘 기업의 말로를 보는 듯하다.
이규민 논설위원 kyum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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