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가 시즌에 치우치지 않고 1년 내내 직원들을 정확히 평가하려면 적는 수밖에 없다”는 것이 P부장의 말. 직원들이 초과근무한 날이나 휴가 낸 날, 경조사까지 적혀 있다.
하나하나 적다 보면 요즘 부쩍 부진한 사람이 눈에 띤다. 그런 사람은 필경 가정에 걱정거리가 있는 경우가 많다. 집에 일이 있는 사람은 일찍 퇴근시키고 생일 때는 꽃을 보내는 등 팀을 원활하게 이끌어가는데도 ‘기록’은 톡톡히 몫을 한다.
항목별로 점수를 매기고 보니 A가 점수가 높지만 전체적으로는 B가 우수하다고 생각할 때. 벽에 부닥친 P부장은 잠시 평가서를 덮고 다음날 새벽 맑은 정신으로 다시 달려든다.
최근 고과를 마친 그는 홀가분하게 직원들과 술을 마실 수 있게 된 것이 무엇보다 기쁘다. 평가에 들어가면 2주일이고 3주일이고 직원들과 개인 만남을 피하는 것이 그의 습관. 괜한 오해를 사거나 스스로 일시적 감정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다.
부장의 평가가 나빠 직원들이 불만스러워하거나 인간적으로 멀어지면 어떡하나. ‘다행히도’ 직원들은 자신에 대한 평가를 알 수 없게 돼 있다. 그러나 사람이 하는 일이다 보니 어쩌다 눈치챌 수도 있다. P부장은 수시로 직원들에게 조용히 이런 저런 코멘트를 함으로써 스스로 부서에서의 위치를 알고 분발하도록 한다고 한다.
팀 전체가 높은 성과를 올려 상을 받고 직원들이 모두 좋은 고과를 받을 때 P부장은 가장 보람을 느낀다. 그는 최근 팀원들에 대한 평가가 끝나고 회사 전체의 팀별평가가이뤄지고있다면서‘오해를 피하기 위해’ 신문에 실명을 밝히는 것을 극구 사양했다.
외국기업에서는 평가를 잘 받기 위한 노력이 좀더 적나라하다. 매년 개인별 연봉협상을 하는 외국인 회사에서 묵묵하게 혼자 열심히 일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자신이 한 일을 끊임없이 ‘광고’하고 윗사람에게 알려야 한다.
볼보코리아의 경우 직원은 매니저에게, 매니저는 사장에게 수시로 e메일을 통해 자신의 업적을 ‘프리젠테이션’한다. 이 회사 마케팅팀 매니저 이진오부장은 “국내 대기업에서는 여러 사람들의 다면 평가를 통해 완충 작용이 이뤄지지만 외국기업은 상사가 절대적인 권한을 가진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 부장은 오늘도 일하랴, 직원들 e메일 검토하랴, 상사에게 잘 보이랴, 너무너무 바쁘다.
신연수기자yssh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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