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싸이더스에서 가요 부문을 맡고 있는 정훈탁 이사가 1993년 누군가를 소개했다.
“어! 야! 분위기가 꼭 홍콩배우 같다. 괜찮네. 나중에 제대로 소개해라.”
이 홍콩 배우 닮은 친구가 바로 정우성이다. 당시 나는 영화사 ‘신씨네’의 제작부장으로 있었다. 그때 ‘레스토랑 오디션’이 인연이 돼 정우성은 94년 영화 ‘구미호’의 주인공이 됐다. 제작자에게 캐스팅처럼 난제는 없다. 열이면 열, 제작자들은 대부분 캐스팅 얘기가 화두에 오르면 “정말 힘들다”며 고개를 설레설레 젓는다.
돈을 많이 준다고 꼭 필요한 배우가 잡히는 것은 아니다. 한국 영화 시장의 규모가 커지면서 충무로의 분위기가 각박해졌다지만 분명 돈 이상의 무언가가 있다. 그것은 의리일 수도 있고 정(情)이기도 하다. 때로 배짱이 맞으면 훨씬 적은 개런티로도 작품에 출연하는 배우를 만난다.
우성이도 역시 소문난 의리파에 속한다. 내가 우노필름을 차린 뒤 우성이와는 97년 ‘비트’를 시작으로 다시 인연이 이어졌다. ‘태양은 없다’ ‘유령’ ‘무사’까지.
그런가 하면 ‘친구’로 스타덤에 오른 유오성은 94년 ‘나는 소망한다. 네게 금지된 것을’에서 처음 만났다. 그는 오디션의 좁은 문을 뚫고 출연 기회를 얻었다. 그는 다시 ‘비트’에 출연해 개성적인 연기를 보여줬다. 이범수와 설경구는 각각 98년 ‘태양은 없다’와 ‘처녀들의 저녁식사’로 각각 만났다. 내가 연기 하나는 끝내준다구 무지 떠들고 다닌 배우들이다.
이들은 우성이를 빼면 한마디로 외모에서 ‘주인공 얼굴’이 아니다. 한데 다들 요즘 주인공으로 펄펄 날고 있다. 내가 캐스팅을 잘한다는 게 아니다. 내 경험상 특히 남성 연기자들은 ‘얼굴 평점’과 연기력은 반비례하는 경우가 많다. 우스개처럼 들리겠지 약점을 보충하기 위한 노력의 결과라고 생각한다. 이런 말을 하고 싶다. 자, 꽃미남이 아닌 배우들이여, 희망을 가지라고. 연기력이 스타가 될 수 있는 시대가 왔다.
그동안 동아일보에 글을 쓰면서 영화도 어렵지만 글쓰기는 더 어렵다고 생각했다. 좋은 영화로 독자들과 만나고 싶다. <끝>
차승재·싸이더스 대표 tcha@freech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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