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된다는 것, 성장은, 나쁜 꿈을 꾸는 것이다라고 이 소설은 전제한다. 이러한 스티븐 킹의 심상찮은 시각은 과거의 경험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그의 ‘어머니의 남편’이었던 남자가 홀연히 집을 떠나고, 그때부터 그의 가족과 그 남자는 각기 타인으로 살아간다. ‘늘 불행했던 여자’인 어머니는 스티븐 킹의 처녀작 ‘캐리’(1974)가 베스트셀러의 영광을 채 누리기도 전에 사망한다. 한마디로 스티븐 킹은 어른에 대해 시선이 곱지 못한 작가이다. 그의 여러 소설 속 등장인물이 비정상적인 인물(어른)로 채워지는 건 어느 정도 이런 까닭에서 기인한다.
‘드림캐처’는 ‘아이’와 ‘어른’의 대립 구도로 이루어진다. 아이는 순수와 동의어이며, 어른은 순수를 잃어버린 모든 인간이다. 다시 말해 어른은 아이에게서 귀양당한 사람이다. 하지만 아이가 어른이 되는 건 반항하거나 발뺌한다고 하여 거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아이에게 어른은 숙명이다. ‘드림캐처’에서 스티븐 킹은 성장이란 부도덕한 경험에의 반복이며, 이것의 행위가 아무렇지 않게 익숙해졌을 때 아이는 비로소 어른이 된다고 단정한다. 결국 어른은 ‘무수한, 나쁜 꿈의 덩어리’일 뿐이다.
호러소설의 황제답게 스티븐 킹은 이번 소설에서도 여러 가지 공포의 색깔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그러나 이 모든 공포는 어른이기에 갖는 판타지적 공포이다. 이 공포는 ‘외계인’으로 극대화되고, 그 반대편에는 순수의 결정체인 성장하지 못하는 소년 ‘더디츠’가 존재한다.
이 소설에서 등장하는 외계인은 순수를 잃어버린 ‘어른’과 동음이의어이다. 나쁜 꿈을 쫓아준다는 인디언의 걸개 그림, ‘드림캐처’ 역시 순수의 다른 이름으로 통한다. 그렇기에 소설은 외계인(어른)과 순수한 시절로 되돌아가려는 어른들과의 전쟁에 다름 아니다. 스티븐 킹이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는 결국 한 가지로 압축된다. 순수했던 시절의 기억을 잃게 되면 현실은 악몽이라는 것.
‘캐리’로부터 시작된 스티븐 킹의 베스트셀러 행진은 아직 멈추지 않고 있다. 거의 모든 작품은 영화나 드라마로 제작되었으며, 이번 작품 역시 영화화가 결정되어 있다. 단지 호러소설의 황제로만 만족하지 않고 새로이 자신의 영역을 구축해 가는 스티븐 킹은 이제 본격문학과 대중문학을 아우르는 중간문학의 가장 앞서 있는 작가처럼 보인다. 아니, 그의 작품은 ‘드림캐처’에 이르러 차라리 퓨전문학의 절정처럼 여겨진다. 그야말로 ‘드림캐처’는 미래의 소설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전형적인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정석화(추리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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