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는 또 최근 마이크로소프트(MS)와 홈네트워크 분야 제휴를 했다. 한국 기업으로는 처음 이 분야 시장을 주도하기 위해서다.
세계 일류 기업들이 경쟁사와 적극적으로 제휴하고 있다. 21세기 기업 경쟁의 화두인 ‘표준’을 장악하기 위해 ‘적과의 동침’도 서슴지 않는 것. 세계 최고의 기술을 개발해도 표준이 되지 못하면 연구비만 날린다. 이 때문에 요즘은 남몰래 신기술을 개발하는 것이 아니라 연구개발 단계부터 가능한 한 많은 기업과 제휴해 동맹군을 늘려 간다.
▽표준은 세 불리기 싸움〓기술이 훌륭하다고 표준이 되는 건 아니다. 1970년대말 VTR분야에서 소니는 베타방식, 마쓰시타는 VHS방식을 개발했다. 엔지니어들은 지금도 기술적으로는 소니의 베타방식이 더 훌륭했다고 회고한다. 그러나 시장 경쟁은 5년 만에 마쓰시타의 승리로 끝났다. 마쓰시타는 필립스 등 경쟁업체들에 기술을 전수하고 할리우드 영화사들과 적극적으로 제휴함으로써 소니를 포위해 고사시켰다. 동기식에 대응하는 비동기식 GSM휴대전화는 유럽연합(EU)이 세계시장 장악을 위해 표준화를 이끈 대표적 사례.
반면 국내 모 전자회사는 1980년대 극비리에 세계최초의 초소형 4㎜캠코더를 개발했으나 소니가 8㎜캠코더로 국제표준기구의 인정을 받는 바람에 개발비만 날렸다. 한때 세계 최대 휴대전화 제조업체였던 미국의 모토로라가 핀란드의 노키아에 1위 자리를 내준 것은 디지털 휴대전화 분야의 국제표준 움직임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표준의 원조는 링컨 대통령?〓미국의 링컨 대통령은 1863년 남북전쟁 때 철로의 간격을 남부(5피트)와 다른 4피트8.5인치로 정했다. 기술적으로는 5피트가 뛰어났지만 남북간의 물류를 차단함으로써 남부군을 고립시키려는 것이 링컨의 의도였다. 미국은 지금도 매년 200억∼300억달러를 표준화에 투자한다.
국제표준이 되기 위해서는 세계무역기구(WTO) 규정에 따라 국제표준화기구(ISO)에서 승인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ISO의 인증 역시 분야별 회의에서 결정되므로 기업과 국가의 세력에 의해 결정된다. 기업의 미래 생존을 좌우하기 때문에 서로 결사적이다.
▽1등끼리 뭉친다〓삼성경제연구소 유석진 연구원은 “표준 관련 ‘패밀리’에는 아무나 들어가는 게 아니다”고 말했다. 기술력이건 제품 개발력이건 가진 게 있어야 한다는 것. 표준은 1등끼리의 리그라는 얘기다.
전략적으로 유리한 파트너를 고르는 경쟁도 치열하다. 가전회사인 소니와 컴퓨터소프트웨어회사인 마이크로소프트, 자동차회사 GM, 컬럼비아영화사, 게임의 세가, 음반회사 EMI 등 각 분야의 세계 정상들이 모이는 경우가 많다.
빨리 포기하는 것도 전략의 하나. 소니는 최근 VCR를 대체할 차세대 디지털 녹화기인 DVD레코더 분야에서 자신의 -RM방식을 중단하고 파이어니어의 +RW진영에 합류했다. 마쓰시타와 도시바의 DVD 램방식에 대항하기 위해서다.
▽한국은 걸음마단계〓디지털시대에는 더욱더 표준기술의 보유 여부가 기업의 운명을 결정한다. 현재 ISO 산하에는 부문별로 759개의 기술위원회가 있어 각 분야의 특정 기술이나 상품의 국제표준을 정한다. 한국은 기술위원회의 정회원율이 49.7%. 2000년 36%에 비하면 많이 늘어났다.
그러나 DVD레코더, 디지털방송전송방식, 무선인터넷 프로토콜 등 최근의 주요 전쟁에서 한국은 ‘양다리 걸치기’에 분주한 수준. ‘별들의 전쟁’속에서 어느 것이 표준이 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정부의 표준 관련 지원 역시 아직 미미하다. WTO는 각국의 새로운 기술적 무역장벽에 대한 보고서를 회원국에 수시로 보낸다. 표준 관련 국제회의만 연간 1500여건. 그러나 정부는 인력부족과 인식미흡으로 극히 일부에 대해서만 업계와 함께 대응책을 마련한다. 대기업은 독자적 정보망을 통해 표준과 각국의 기술장벽에 대처하지만 중소기업은 고전한다. 어떤 중소기업은 선적했던 제품이 되돌아와 낭패를 보기도 한다.
신연수기자 ysshin@donga.com
하임숙기자 arteme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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