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현실인식 너무 안이▼
문제는 지금부터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 하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한미 양국 간의 긴밀한 협의가 중요하다. 대북관과 대북 정책에 대해 양국 간에 솔직하고 냉정한 의견교환이 있어야 할 것이다. 상대의 의도를 아전인수식으로 해석하거나 분명하게 드러난 견해차를 없다고 강변해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누가 맞고, 누가 틀리냐의 문제가 아닌 만큼 견해가 다르다고 체면을 구긴다고 생각할 필요도 없다. 문제의 핵심은 서로의 상이한 우선 순위와 이익을 어떻게 절충하느냐 하는 것이며 이를 통해 최선의 전략을 찾아내는 것이다. 양국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앞으로 한반도에는 많은 사람이 우려하는 위기가 닥칠 수도 있고, 반대로 진정한 긴장완화의 계기가 마련될 수도 있다.
따지고 보면 굳이 이번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의 대북 경고가 없었다고 하더라도 한반도에는 오랜 숙제가 있다. 바로 핵 미사일 등 북한의 대량 살상무기 문제다. 워낙 해결이 쉽지 않은 어려운 숙제이기 때문에 가능한 한 미루고 싶은 것도 사실이다. 이번 부시 대통령의 연두교서 발언은 이제 이를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자명종 역할을 한 셈이다.
사실 지난 10년을 되돌아보면 한반도의 위기는 항상 북한의 대량 살상무기와 직결되어 있었다. 1994년 핵 위기가 그랬고, 1998년의 대포동미사일 위기 때도 그랬다. 문제는 당시 위기를 일단 넘기긴 했지만 위기를 유발시켰던 근본원인은 해소되지 않고 여전히 남아 있다는 사실이다. 핵 문제는 1994년의 제네바합의로 해결의 틀은 마련했지만 가장 민감한 북한의 과거 핵 활동 규명은 미래의 숙제로 남겨 놓았었다. 미사일 문제도 북한이 2003년까지 장거리 미사일 시험발사를 유예함으로써 일단 한숨은 돌렸지만 미사일 개발, 수출, 배치 등 근본문제는 전혀 해결되지 않은 채 남아 있다. 이제 이 숙제들을 풀어야 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9·11 테러와 대량 살상무기를 이용한 테러의 가능성은 이러한 문제 해결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더욱 부각시켰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먼저 북한의 대량 살상무기 위협의 심각성을 제대로 인식해야 한다. 언제부터인가 북한의 핵 미사일 개발은 북한의 체제불안에서 나온 협상용이거나 외화획득을 위한 상업용으로 그다지 대수로운 것이 못된다는 식의 시각이 확산되고 있다. 심지어 국가의 안보를 책임지고 있는 당국자까지도 공개적으로 이런 식의 발언을 하기도 한다. 또 한반도 문제는 그저 북한의 체면을 세워주고 가진 우리가 베풀면 해결될 수 있다는 식의 안이한 사고도 팽배해 있다. 그러나 사실이 아닌 추정에 근거한 이런 모호한 생각으로는 상대를 설득할 수 없으며 실제 문제 해결에도 도움이 되지 못한다. 북한의 의도가 무엇이든 대량 살상무기의 개발과 확산은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해치고 국제테러리즘의 위험을 증대시킨다는 분명한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이를 인정하지 않으면 한미간 공조는 출발조차 어려워진다.
▼한-미 솔직한 대화 절실▼
그러나 북한의 대량 살상무기의 위협을 해결하는 전략과 방법에 대해서는 우리의 이익에 입각한 확고한 방침을 제시해야 한다. 사실 이 문제는 어제오늘 나온 게 아니다. 그만큼 해결이 쉽지 않은 문제이기도 하다. 이를 단숨에 해결하려고 서두르거나 과잉반응을 보여서는 안 된다. 한미 양국은 긴밀한 공조를 바탕으로 인내심을 갖고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해치지 않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중국, 일본, 러시아 등 주변국과도 협력해 북한이 진지한 자세로 대화에 나오도록 유도해야 한다.
다가오는 한미 정상회담은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에 또 하나의 고비가 될 대단히 중요한 회담이 될 것이다. 북미간의 긴장국면이 한미간의 갈등과 한반도의 위기로 이어지지 않고 한반도의 오랜 숙제인 북한의 대량 살상무기 위협의 해결을 위한 기회가 될 수 있도록 한미 양국의 당국자들이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백진현 서울대 국제지역원 교수·국제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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