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전도연이 3월 1일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로 열풍을 일으킨 류승완 감독의 ‘피도 눈물도 없이’로 1년만에 복귀한다. 한 폐선박의 투견장을 배경으로 거친 마초들 틈새에서 돈가방을 놓고 벌이는 두 여자의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를 그린 이 영화에서, 그는 권투장의 라운드 걸 출신 수진 역을 맡아 11년 연상인 이혜영(경선 역·택시기사)과 공연했다. 그는 오래 쉰만큼 할 말이 많았다.
-류승완 감독과 작업한 것은 의외라고 본다. 이제까지 메이저를 걸어왔는데 그는 아직 마이너다.
“더 이상 멜로로는 안되겠다고 생각했다. 눈물로 보여줄 수 있는 것은 한계가 있더라. 이 영화를 통해 여자가 가진 ‘바닥’의 최대치를 보여줄 것이다.”
-무슨 ‘바닥’?
“이제까지 영화에서 제대로 욕한 적 없는데, ‘피도…’에서는 ‘ㅈ’자 들어가는 욕도 한다. 거친 여성의 삶을 통해 최소한 이전 멜로 이미지와는 겹치지 않으려 했다.”
-한국 나이로는 이제 서른(1973년 2월 생)이다. 서른살 여배우, 몸도 마음도 생각할 게 많겠다.
“아직 자신있는데, 한국에선 유독 나이에 ‘이상한’ 의미를 주기 때문에 주위에서 말이 많은 게 사실이다.”
대화 도중 기자가 실수로 전도연 쪽으로 물 컵을 엎지르자 그는 협찬받은 옷이라며 물기 묻은 가죽 재킷을 급히 벗었다. 얇은 민소매 티셔츠와 함께 두 팔, 목덜미가 훤히 드러났다. 자신감이 이해될만큼 몸매는 단단했다. 그는 애써 “영화 찍느라고 무술감독 정두홍이 운영하는 ‘액션 스쿨’에서 넉 달 넘게 구른 덕”이라고 설명했다.
-여자를 상대역으로 공연하는 것은 처음이다.
“멜로 컨셉트가 없으니까 기존의 남녀 구도는 필요없다. 문제는 혜영 언니와 호흡인데, 97년 말 악극 ‘눈물의 여왕’을 같이 하면서 사실 말도 못붙일 정도로 어려워했다. 이번에도 연기에 대해서는 이야기를 많이 나눴지만 아직 그의 사생활까지는 알지 못한다.”
-요즘 충무로에서는 여배우가 없다고 야단이다.
“내가 요즘 가장 어이없어 하는 것중 하나다. 지난해 한국 영화 흥행작은 전부 남성 영화다. 제작자들은 아예 여배우들을 주연 남성을 보조하는 서포팅 액트리스(supporting actress)로 설정하고 영화를 기획한다. ‘조폭 마누라’도 남성 역할을 하는 여성이라는, 뭐 그런 파격을 준 것 이상은 아니라고 본다. 여배우를 발굴하려고 하지않고 무조건 없다고만 한다니까.
-그런데 여성 영화 제작자들도 여배우가 없다고 한다.
“내가 볼 땐 제작자들의 모험 정신 부족이다. 남자 배우를 위주로 ‘안전빵’으로만 가려고 한다.”
전도연은 인터뷰 내내 ‘피도…’의 홍보와는 별 상관없는 질문에 대해 더 큰 관심을 보이며 정련된 논리로 응사했다. 지난달 말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스크린쿼터 사수 결의 대회에서 맨 앞줄 한 가운데에 자의반타의반으로 앉아야했던 얘기, 그렇지만 아직 한국 영화에 거품이 많다는 것을 절감한다는 등등.
그리고 그 차분한 이야기들은 서른이 됐어도 별 두려움이 없다는, 그의 자신감을 더욱 강렬하게 비추고 있었다.
이승헌기자 ddr@donga.com
구독
구독
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