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다 보니 재수를 택한 학생들이 상당수에 달한다. 올 입시에서 재수생 수는 18만명 정도였으나 내년 입시에는 이보다 많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유명 재수학원들은 시험을 통해 수강생을 선발하는데 경쟁률이 만만치 않다고 한다. 재수를 위한 학원에 들어가기조차 쉽지 않은 것이다. 재수생 한 명이 재수 생활 1년 동안 1000만원의 비용을 쓸 경우 20만명이 재수를 한다면 그 시장 규모가 2조원이다. ‘학원 재벌’이라는 말이 나온 지는 오래지만 최근에는 늘어나는 재수생들로 인해 ‘재수산업’이라는 신조어가 등장하고 있다.
▷자식을 재수시켜야 하는 학부모의 심정은 착잡하고 불안하다. 힘든 재수 생활을 잘 견뎌낼 수 있을지, 재수를 해서 과연 좋은 대학에 들어갈 수는 있는지…. 80년대만 해도 재수생들은 대학생이 많이 몰리는 거리를 일부러 피해 다니는 경우가 많았다. 명문대에 입학해 대학생활을 만끽하는 동창생들을 만나는 게 싫었기 때문이다. ‘광화문통 아이들’은 70년대 유명 학원들이 몰려 있던 광화문 일대의 재수생들을 얕잡아보는 말이었다. 학부모 세대에 비해 요즘 수험생들은 재수에 대해 한결 부담감을 적게 갖고 있는 것 같다. 요즘 신세대들이라고 마음고생이 없을 리 없겠지만 전보다는 재수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일종의 세태 변화라고 할 수 있다.
▷입시 열병에 시달리는 것은 수험생 당사자만이 아니다. 이들을 뒷바라지하는 부모들도 수험생 앞에서 큰 소리조차 내지 못하면서 죽은 듯 지낸다. 치솟는 사교육비는 부모로서 다른 비용을 줄이더라도 당연히 감당해야 할 몫이다. 재수생을 둔 가정은 이 같은 입시 고통이 한 해 더 연장된다. ‘재수산업’이 번창할수록 학부모들의 시름은 그만큼 깊어질 수밖에 없다.
홍찬식 논설위원 chansik@donga.com
구독
구독
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