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하일지(47)가 첫 영화소설 ‘마노 카바나의 추억’을 내놓았다. ‘영화소설(시네로망)’이란 읽히기 위해 쓰여진 시나리오를 뜻하는 말.
자신의 소설 ‘경마장 가는 길’ 영화화 작업에 참여했던 작가는 작가로서 직접 내놓는 내러티브(發話) 대신 카메라가 관찰하는 시점을 통해 상황이 전개되도록 함으로써 시각적이고 속도감 있는 효과를 자아내고 있다.
작품의 무대는 방송사의 한 문학기행 프로그램. 50세의 독신 시인이자 교수인 서인하의 문학세계 탐방에 같은 학교의 연극영화과 학생 유하영이 동행하기로 돼있다. 하영의 친구 강수미는 하영을 설득해 그 대신 자신이 프로그램을 맡게 된다.
녹화가 진행되면서 점차 도발적인 자세로 인하를 유혹하는 수미. 처음에는 의식적으로 거리를 두던 인하도 무의식적으로 충동에 이끌리게 되지만 수미는 희롱하듯 그를 피하고 대신 동행한 방송 스태프를 차례로 유혹한다.
마침 친구인 의대 교수에게 폐 정밀진찰을 의뢰하고 결과를 기다리던 인하는 전화를 통해 자신에게 치명적인 운명이 닥치는 것을 예감하게 되고, 운전기사가 수미와 관계하는 장면을 목격하자 절망을 이기지 못한 나머지 운전기사를 폭행하게 된다. “언젠가 교수님은 저를 죽일 거예요. 세상에는 교수님이 원하는 그런 완벽한 여자는 없을 거예요”라는 수미의 거부에 절망한 인하는 손목을 긋고 바다 속으로 걸어 들어가게 되는데….
전형적 팜므 파탈(妖婦)과 희생자를 대립시키는 작품 구조가 그다지 새롭게 읽히지는 않는다. ‘개나 여자나 두려워하는 기색을 보이면 점점 더 사나워져요’ ‘미슐레는 이런 말을 했어요. 젊고 아름다운 여자에게는 마성이 있다고’라는 대사를 통해 작가는 이 주제를 더욱 쉽게 읽히도록 만든다. 생명력을 띤 젊은이와 생명력을 잃어가는 예술가, 둘 사이의 유혹과 파멸은 언뜻 토마스 만의 ‘베니스에서 죽다(Tod in Venedig)’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나는 장차 한 사람의 작가로서 평생을 두고 할 수 있는 작품은 얼마나 될까 따져보았다. 3편의 오리지널 시나리오 등 모두 19편이라는 것을 알았다. 이 작품은 80년대 중반 프랑스 중부의 한 도시에, 동양의 한 독재국가에서 온 창백한 유학생이 고독한 그의 산책길에서 산출했던 19편 중 하나다”라고 작가는 말했다.
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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