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계올림픽 현장에서]팔이 안으로만 굽는 美언론

  • 입력 2002년 2월 16일 17시 40분


금메달을 되찾은 캐나다의 펠레티어(왼쪽)-세일 조
금메달을 되찾은 캐나다의 펠레티어(왼쪽)-세일 조
“언론이 훌륭한 결정을 내리는 데 큰 도움을 줬으며 이는 아주 긍정적인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러시아와 캐나다의 순위 의혹으로 불거진 피겨스케이팅 페어종목 ‘판정 스캔들’에 대해 16일 국제올림픽위원회(IOC)와 국제빙상연맹(ISU)이 양국에 공동금메달을 수여하기로 결정한 뒤 오타비오 친콴터 ISU 회장은 미국 언론에 이처럼 ‘고마워’했다. 마치 ‘언론이 아니었으면 잘못을 파악하지 못할 뻔했다’는 투였다.

그의 말대로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을 강타한 이번 스캔들이 양국 모두에 금메달을 주는 ‘윈-윈’으로 끝난 것은 바로 ‘언론의 승리’였다. 12일 판정이 나온 뒤 미국 언론들은 연일 톱뉴스로 판정의 잘못을 조목조목 지적하며 물고늘어졌다.

미국 언론이 ‘판정 시비’를 ‘판정 스캔들’로 부각시킨 것은 잘못된 판정이 구 공산권국가들의 단합에서 비롯됐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기 때문. 공교롭게도 러시아에 승리를 준 심판의 출신국가가 러시아를 비롯해 폴란드 우크라이나 중국 프랑스였다.

결국 집요하게 파고드는 미국 언론이 자크 로게 IOC위원장이나 친콴터 ISU 회장에게 큰 부담으로 작용했다. 특히 지난해 후안 안토니오 사마란치의 후계자로 IOC 수장의 자리에 오른 로게 위원장은 IOC 위원장이 된 후 처음 치르는 이번 올림픽에서 흠집이 나는 걸 두고 볼 수 없었던 것.

하지만 러시아가 아닌 자국선수가 금메달을 땄어도 미국 언론이 이를 이토록 파고들었을까. 미국의 캐이시 피츠랜돌프는 12일 스피드스케이팅 500m 1차 레이스에서 미리 스타트를 끊으며 올림픽신기록을 세웠다. 슬로비디오 상으론 스타트 전 손이 먼저 움직여 ‘부정출발’로 인정됐어야 할 상황. 그는 정상 출발한 2차 레이스에서 34초81의 저조한 기록으로도 1차 레이스에서 시간을 번 덕분에 세계기록보유자인 일본의 시미즈 히로야쓰에게 0.03초 앞서 금메달을 차지했다. 이에 이의를 제기한 미국 언론은 한 군데도 없었다.

이번 올림픽에서의 미국 언론보도는 한마디로 ‘팔이 안으로 굽듯’ 자국선수에겐 한없이 관대하고 외국선수에겐 칼날같이 엄격하기만 하다.

솔트레이크시티〓김상수기자

ss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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