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년병 시절 얘기를 묻자 “그 때는 인기 좋았다”는 다소 엉뚱한 말을 대뜸 꺼냈다. 여성 애널리스트가 워낙 귀하던 때라 업체 이곳저곳에서 “꼭 탐방을 와달라”는 요청이 잇따랐다는 것. 조연구원은 “여자가 기업분석업무를 하는 게 신기하다는 반응들이었다”면서 “그래서 얼굴이나 한번 보자는 식의 요청이 많았다”고 말했다.
지금은 어느 곳을 가든 신기하게 바라보는 사람은 없다고 조연구원은 전했다. 그만큼 여성 애널리스트의 숫자가 많아졌고 활동 영역도 넓어졌기 때문.
최근 2∼3년간 증권가의 ‘우먼 파워’는 눈에 띌 정도로 세졌다. 우선 애널리스트 영역에서 여성의 숫자가 크게 늘어났다. 증권사마다 5명 안팎의 여성 애널리스트가 활동하고 있으며 어떤 증권사는 기업분석팀의 30%를 여성이 차지하고 있을 정도.
여성 애널리스트들의 활동 분야는 대개 화장품 음식료 등 ‘여성취향적’인 일부 업무에 국한됐지만 최근 들어선 점차 철강 금융 통신 전력 등 전분야로 확대되는 추세. LG투자증권의 이은영 연구원은 증권가에서 ‘철의 여인’으로 통할 정도로 철강 업종 분야에서 자리를 굳혔다. 대우증권 이수혜연구원(30)은 “그런 변화가 생기는 것은 이제 이쪽 세계에서 남자 여자를 따로 구분할 필요가 없어졌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금녀(禁女)의 벽’이 훨씬 높았던 펀드매니저 업계에서도 여성 매니저들이 하나둘 부상하고 있다. 대한투신운용의 채권 펀드매니저 김정숙씨(31)는 2조원에 가까운 돈을 굴리며 업계에서 ‘아마조네스 김’으로 통한다. 상사인 류희대 팀장은 “처음에는 이렇게 잘할 수 있을지 반신반의했다”면서 “여성 특유의 유연성으로 시장을 따라가는 능력이 탁월하다”고 말했다.
이처럼 증권가의 여성 전문가가 늘고있는 것은 능력면에서 남자에 못지 않은 평가를 받는 덕분이다. 최근 각종 ‘베스트 애널리스트 선정’에서 분야별 1위를 차지하는 여성이 속출하고 있다.
제약업종의 단골 수상자인 조윤정연구원을 비롯해 LG투자증권의 송계선 이은영 연구원, 삼성증권의 한영아 연구원 등이 두각을 나타냈다. 증권분석사협회 이사인 브릿지증권 김경신상무은 “꼼꼼하고 섬세한 여성 특유의 강점이 증권 업무에 잘 들어맞는다”고 말했다.
증권가에서 여성파워가 뿌리를 내린 데는 여성에 대한 편견을 깨뜨리려는 이들의 노력이 가장 큰 몫을 했다.
“독종 기질이 있다”는 평가를 받는 교보증권 이혜린스트래티지스트(27)는 입사 이후 1년 넘도록 자정을 넘겨 퇴근을 했지만 불평 한 번 한 적이 없다. 이연구원은 “과감한 점에서는 남자들에 비해 약할 수 있지만 끈기 하나만큼은 절대 뒤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김정숙매니저는 “홍보용으로 여성을 내세웠다는 오해를 불식시키기 위해서 ‘수익률로 승부하겠다’며 이를 악물었다”고 밝혔다.
지난해 대우증권 창립 30년만에 여성으로서는 처음으로 지점장 자리에 오른 이원규(39) 삼풍지점장처럼 영업부문에서 승부하는 여성도 늘고 있다
그래서 요즘 증권가에선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하는 게 아니라 새벽이 온다’는 말이 갈수록 힘을 얻고 있다.
금동근기자 go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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