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한 배경에서 북-미대화를 촉구하는 소리가 도처에서 높아가고 있다. 이 상황에서 북한이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는 앞으로의 북-미관계, 남북관계, 나아가 아시아의 평화와 안정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 변수의 하나다.
북-미대화와 관련해 북한이 선택할 수 있는 대안으로 몇 가지를 상정할 수 있다. 제1안은 대미 초강경자세를 선명히 하며, 그것을 적절한 정도의 행동으로 과시하는 것이다. 북한의 요구조건이 충족될 때까지 상당기간 미국과의 대화를 거부한다. 국내의 전쟁대비를 가속화하고 그들이 말하는 ‘전쟁광 부시’가 이끄는 ‘악마의 제국’ 미국의 압살기도에 대항하는 행동을 취할 의사를 선언하고, 그 중 일부를 실행에 옮긴다.
제2안은 당분간 현재 수준의 대미 강경자세를 선언적 차원에서 유지하되 점차 그 수위를 조절해 미국과의 대화에 응할 수 있는 명분 축적과 국제적인 환경조성을 위해 노력한다. 일정한 시일이 경과한 뒤 미국이 지난해 이래 거듭해온 대화 제기에 유의해 응한다는 명분으로 미국과 1, 2차의 예비회담을 갖고 본회담의 이행 여부를 결정한다.
제3안은 현재의 강경자세를 당분간 유지한 뒤 미국과의 대화협상 국면으로 전환할 것임을 선언한다. 예를 들어 5월 평양에서 북-미간 고위급(외무·국방장관급) 회담을 개최하자고 제의한다. 첨예한 북-미간 대결상황에 직면해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 전제조건없이 대화하기로 결정했다는 명분을 내세운다. 제4안은 상기한 제2안이나 제3안을 추진하면서 동시에 한국정부와 합작해 남북관계를 극적으로 진전시킨다는 것이다.
이러한 대안 중 제1안은 북에 가져오는 심각한 위험과 불이익으로 보아 전면 실행 가능성은 낮다. 가장 가능성이 높은 것은 제1안과 제2안을 혼합한 것이다. 제1안 중 너무나 위험부담이 높은 벼랑끝전술은 회피하면서 대미 압박용으로 보일 수 있는 낮은 위험수위의 모종의 사태나 사건 발생을 생각할 수 있다. 국내용 및 대외 선전용으로 제1의 자세를 견지하되, 실질적으로는 제2의 방향으로 선회해 미국과의 대화를 모색하는 것이다.
제3안을 북한이 선택할 가능성도 낮다. 북한의 인식과 정책결정 과정의 경직성으로 보아, 더구나 최근 미국의 공개적인 ‘협박’이 있었던 상황에서 제3안의 조기 채택은 힘들 것이다. 제4안을 채택할 가능성은 더욱 희박하다. 심화되는 한국 내의 불안정과 갈등 양상, 김대중 대통령의 통치능력 저하, 한국의 대북 지원 역량의 한계, 한미 정부간의 심한 상호불신감에서 오는 한국정부의 대미 발언권 약화, 한국 차기 정권에 대한 고려 등으로 한국정부와의 협력과 합작에의 의욕은 상쇄될 것이다.
북한은 대화를 위해선 부시정권이 클린턴 행정부 말기의 정책으로 회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주목해야 하는 것은 부시 행정부가 2000년 가을 북-미 공동성명의 내용을 부인도 확인도 한 일은 없다는 점이다.
중요한 것은, 부시 대통령의 문제 발언 이후 전쟁위기를 운운하는 논쟁이 있긴 하지만 북-미가 가까운 장래에 군사적 충돌상황으로 돌입할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다는 점이다.
최근 필자가 미국 정부 요인들과의 일련의 대화에서 얻은 결론은 미국이 대화를 통해 공동으로 해법을 모색할 용의가 있다는 것이다. 미국은 북-미 양국 간의 외교관계 수립, 정상적 관계 정립을 목표로 양측의 관심사를 놓고, 포괄적으로 문제해결에 접근해 단계적으로 상호합의를 실천하고자 한다. 필자의 판단으로는 자주성, 평화보장 체제, 경제재건 등 북한의 핵심적인 이익에 부합되는 대안을 모색하고, 타협안을 찾아내는 일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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