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트]알뜰 명품족 늘어…상류층 흉내내기 우려 목소리

  • 입력 2002년 2월 21일 16시 10분


대학생 홍원기씨(남·25)가 명품 가방을 구입하는 과정은 내 집 마련만큼이나 치밀하다.

원하는 상품을 정하면 인터넷 등을 이용해 다양한 정보를 확보하고 장기간 자금마련 계획을 짠다. 찍어 놓은 명품(名品)을 싸게 사기 위해 해외여행 기회도 이용한다.

“1년에 한 번쯤 배낭 여행 등을 가잖아요.” “명품은 자주 사는 게 아니니까 여행 준비를 하면서 구매 리스트를 준비합니다.”

홍씨는 지난해 여름 유럽 여행 때 이탈리아에 있는 프라다 직영점을 찾아가 한국에서 50만원에 팔리는 가방을 15만원이라는 헐 값(?)에 사기도 했다.

평소에는 할인 쿠폰이 없는 식당에는 안 갈 정도로 짠돌이지만 마음먹은 것에는 돈을 아끼지 않는다는 것.

고급 소비가 확산되고 있다. 명품 구매층이 두터워지고 식품이나 서비스 상품도 ‘프리미엄형’ 이 인기다. ‘명품족’ 을 따로 구분하는 것이 무의미할 정도.

‘고급 소비’ 라면 흔히 떠올리는 일부 부유층의 과소비와 달리 절약형 합리형인 점이 최근의 추세. 하지만 소득 수준을 넘는 소비를 하면서 상류층 흉내를 내려는 현상에 대한 우려도 적지 않다.

▽알뜰 명품족 늘어난다=할인점과 인터넷쇼핑몰의 명품 매출이 최근 크게 늘고 있다.

할인점 그랜드마트의 서울 신촌점은 지난해 12월 명품매장을 열고 백화점이나 명품 전문점에서만 팔던 버버리 구치 페라가모 등을 판매하고 있다. 신촌 일대의 대학생들이 주고객. 평당 하루 매출이 60여만원으로 점포 전체 평균의 4배가 넘는다.

인터넷쇼핑몰 삼성몰의 명품 매출도 작년 1월 약 8000만원에서 12월에는 2억8000만원으로 급증했다. 객단가(1인당 구매가격)도 14만원 선에서 30만원 선으로 증가했다. 품목도 초기에는 명함집 등 단가가 낮은 소품 위주였으나 최근에는 핸드백 옷 등으로 다양해지고 있다.

인터넷 쇼핑몰 인터파크에 따르면 최근 명품 구매고객의 52.2%가 20대 후반∼30대 중반의 젊은 여성. 명품은 돈 많은 50대 사모님 이 산다는 고정관념이 깨진 셈.

롯데닷컴 관계자는 “명품을 시중가보다 20∼30% 싸게 살 수 있다는 장점에 젊은층이 많이 찾는 것 같다” 며 “최근에는 명품몰 이용자가 수도권 중심에서 지방으로 확산되는 추세도 보인다” 고 말했다.

매장 직원을 능가하는 제품 정보가 있다는 점도 알뜰 명품족의 특징. 인터넷 포털 ‘다음’ 에는 명품 동호회 100여 개가 활발히 활동 중이다.

현대백화점 루이뷔통 매장의 관계자는 “신상품 정보를 내가 본사에서 입수하는 시기나 고객이 알고 문의해 오는 시기나 비슷하다” 며 “올 봄 새로 나올 구두에 달릴 브로치를 지난해에 산 구두에 달아 줄 수 있는지 물어 보는 고객도 있다” 고 말했다.

▽ 프리미엄 감수한다=영화관 분당CGV의 ‘골드 클래스’ 는 120도까지 젖혀지는 침대형 좌석으로 상영관 내에서 술을 마시거나 식사도 할 수 있다. 영화 값만 2만원이 넘지만 최소한 1주일 전에는 예약해야 할 정도로 인기다.

무료 배송이 일반적인 인터넷 쇼핑몰에도 프리미엄 유료 배송 이 도입되고 있다. 인터파크는 지난해 12월 PC를 주문한 당일에 설치까지 해주는 프리미엄 배송을 도입했다. 1만5000원을 추가로 내야 하지만 이용 고객이 작년 12월 70명, 올해 1월 120명 등으로 꾸준히 늘고 있다. 할인점 홈플러스도 다음달 선보일 인터넷 식품점에서 신선 식품을 무료 배송과 빠른 냉장 배송(유료)의 두 가지로 운영할 계획이다.

최근 유기농산물 매출이 급증하고 도완녀의 첼리스트 된장 등 개인 브랜드 식품이 인기를 끄는 것도 비슷한 맥락. 현대백화점 식품팀 최보규 차장은 “유기농이 일반 제품보다 20%∼100%까지 비싸지만 매출이 꾸준히 늘고 있다” 고 설명했다. 첼리스트 된장도 일반 된장보다 7배 비싸지만 홈쇼핑 한 채널에서 시간당 200개 이상 팔린다. 이름을 건 제품, 전문 장인이 수(手)제작한 식품이라는 점에서 그만한 값을 낼 만하다는 것.

▽상류층 흉내내기는 아닌가=삼성경제연구소 최순화 수석연구원은 “고급품 소비도 여러 조건을 복합적으로 따지는 계획적, 지성적 경향을 보인다” 고 설명했다. 서울대 소비자 아동학부 김난도 교수도 “옷은 검소하게 입고 핸드백만 프라다를 쓰는 식의 일품 명품주의가 확산되는 등 신분 과시형이라기보다 정체성 찾는 문화적 측면이 반영됐다” 고 분석했다.

김 교수는 그러나 “요즘의 20대는 소비문화가 놀이문화를 대체한 첫 세대” 라며 “물질이 지나친 의미를 갖는 측면도 있다” 며 “자신도 상류층과 같은 소비를 한다는 자기 만족을 위해 소득 수준을 넘어서는 소비를 하는 경향은 경계해야 한다” 고 지적했다.

김승진기자 sarafi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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