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은 기하에서 시작해서 기하로 끝납니다.”
임석재 이화여대 건축학과 교수가 ‘기하’를 주제로 한 현대 건축사 책 2권을 썼다. 2000년 발간된 ‘한국적 추상 논의’에 이어 ‘1990년대 한국 현대 건축사’시리즈의 2, 3권을 이루는 ‘기하와 건축’과 ‘기하와 현실’(북하우스).
‘건축에서의 기하’란 무엇일까. 쉽게 풀어보면 삼각형 사각형 원 등 기본적인 조형요소를 건축에 응용하는 것.
“물론, 대부분의 건물 모습은 기하학적 요소를 갖고 있어요. 그러나 건축에서 기하를 응용한다는 것은 ‘도형의 질서’를 유지하면서 건축물이 요구하는 질서를 아울러 맞춰나가는 것을 뜻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볼때 ‘기하주의적 건축’은 의미의 폭이 좁아지죠.”
두 권의 책은 1990년대 지어진 우리나라의 대표적 기하주의 건축물을 컬러 화보로 소개하고 각각의 의미와 가치를 논한 ‘건축비평’을 담고 있다. 왜 1990년대일까.
“이 시대에 들어와서야 한국적 상황에 대한 고민이 건축에 치열하게 나타나게 됩니다. 서구 문명이 제도의 중심에 들어왔지만 일상생활이나 관습에 있어서는 아직 깊이 침투하지 않았고, 그런 부조화에 대한 고민이 건물과 주변환경의 조화 및 맥락에 대한 고민으로 나타나게 되죠.”
그가 기하적 관점에서 가장 성공적으로 평가하는 건축물은 서울 동숭동 무애빌딩(1995) 과 대구은행 연수원(1998). 전자는 주변과의 조화에서, 후자는 자기 주장과 개성에서 성공을 거두었지만 서로 그 반대의 기준을 적용하면 일정한 한계도 지닌다고 그는 설명했다. “건물의 개성을 강조하면 환경과의 조화까지 완벽하게 충족시키기 힘듭니다. 일종의 ‘제로섬’적 요소라고 할까요. 이 두가지 과제를 적절하게 융화시키는 것 역시 건축가가 지니는 과제입니다.”
그가 1990년대 한국 건축에 대해 매기는 점수는 ‘85점 정도’.
‘국적불명’ 이라는 등 아쉬움을 토로하는 소리도 있지만 제한된 여건에 비해 진지한 노력이 후대에는 평가받으리라는 긍정적인 견해다.
“우리만한 규모의 나라에 이토록 많은 건축양식이 선보이고 있는 곳도 없습니다. 자유롭다는 측면도 있지만 도시경관 전체로서는 개성이 없다는 뜻도 되겠지요. 경제성 역사성 심미성 등을 고려해 앞으로 100년 동안 우리 건축을 끌어나갈 양식을 만들어낼 건축가가 태어난다면, 그는 21세기 한국 건축의 아버지로 불리게 될 겁니다.”
최근 방학을 이용해 터키와 프랑스의 건축물을 둘러보고 온 그는 ‘추상’ ‘기하’에 이어 앞으로 ‘혼성’ ‘팝’ ‘자연’ 등을 주제로 1990년대 한국 건축사 시리즈를 계속 선보일 계획이라고 밝혔다.
유윤종기자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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