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엄 스님의 부친 청담스님은 일제시대와 6·25전쟁등 현대사를 거치며 움츠러 든 불교를 바로 세우며 일생을 불교 정화에 애썼다. ‘무슨 일이 있어도 대를 이어야한다’는 부모의 간청과 꽃다운 나이에 생과부 신세가 되야 하는 아내를 뒤로 하고 출가를 했으나 노모의 원을 거절할 수 없었던 것. 그리하여 하룻밤 파계로 얻은 핏줄이 바로 묘연스님이다. 그 딸은 14살 되던 해 정신대를 피하기 위해 어머니의 말씀을 듣고 아버지 청담 스님을 찾아가지만 아버지의 친구였던 성철스님을 먼저 만나게 된다. 성철스님은 친구의 딸에게 불교 역사 교양등을 손수 가르쳐주고 ‘묘엄’이라는 법명도 준다.
묘엄은 이듬해 스스로 삭발 출가한다. 경봉 운허스님등 당대 내로라하는 큰스님들의 가르침을 받은 묘엄스님은 국내 최초의 비구니 강사가 되어 동학사 운문사 등지에서 비구니 강원을 이끌었으며 지금은 봉녕사 승가대학 학장으로 한국 비구니 강원을 대표하는 인물이 되었다. 노 비구니 스님의 행장기를 통해 한국불교사 전개의 주요한 흐름을 가늠해 볼 수 있다.허문명기자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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