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사진작가이자 다큐멘터리 작가인 저자는 1986년∼1997년 당시 막 스타로 떠오르고 있었거나 바로 그 직전 상태인 배우들을 만나 육성 그대로를 녹취했다. 그가 선택한 배우들은 부나 명예 때문이 아니라 진정 연기에의 열정을 가진, 자신의 내면에서 울려 나오는 영혼의 부름을 주체하지 못해 연기자가 되고자 하는 사람들이었다. 그의 눈은 적중했다. ‘X파일’로 뜨기 전의 데이빗 듀코브니를 만났고 ‘스피드’로 스타가 되기 전의 산드라 블록과 키아누 리브스를 인터뷰했다. 당시 B급영화에서 전전하고 있던 브래드 피트, 약물중독과 두 번째 이혼의 상처에서 막 벗어난 멜라니 그리피스도 만났다. 지금으로부터 십수년전 그들의 신인시절 생생한 목소리들은 스타라 불리는 그들 역시 우리처럼 똑같은 인간임을 깨닫게 해준다. 한편으로는 강인하지만 또 연약한, 개성을 가진 그저 한 사람의 인간말이다.
가령 영화 ‘스피드’, ‘매트릭스’의 주인공 키아누 리브스에게도 이런 시절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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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션이 있을 때 마다 달려갔지만 결과는 늘 “훌륭해, 아주 훌륭해…. 그러니 내년에 한번만 더 도전해 보게” 였다. 친구 1, 살인청부업자, 키 큰 사내역을 맡는 것도 신물이 날 정도였다. 내 나이 이미 열아홉이 되어 있었고 온 몸에 넘치는 에너지를 주체할 수 없었다.’
TV드라마 시리즈 ‘X파일’의 말끔한 양복차림 FBI 수사요원 멀더역의 데이빗 듀코브니는 이미 알려져 있다시피 ‘가방끈이 긴’ 배우다. 캐네디 2세가 다녔던 고급 사립 고등학교를 장학생으로 졸업했고 프리스턴과 예일 두 명문대학을 나왔으며 두 개의 석사학위와 한 개의 박사학위를 갖고 있다. 하지만 그는 과감히 직업을 바꿨다. 좌절과 방황으로 할리우드를 맴도는 빈대생활이 그에게도 있었지만 이제 스타로 우뚝 선 것이다. 교수의 길을 택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그는 이렇게 말한다.
“지금까지의 공부는 오로지 두뇌개발과 학문의 연마였을 뿐, 내면으로부터 터져나오는 분노나 절규, 기쁨을 발견하고 즐기는 방법은 배우지 못했다. 내 두뇌는 집채만 했지만 가슴은 콩알만큼 잔뜩 움츠러 들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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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는 약물중독에서 벗어 나고자 애쓰고 있는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원나잇 스탠드, 도망자 2)의 힘겨운 분투기와 불우했던 어린 시절 이야기, 흑인배우로서 수많은 차별과 좌절을 겪어내야 했던 로렌스 피쉬번(지옥의 묵시록, 매트릭스)의 외로운 투쟁기가 꾸밈없이 솔직한 목소리에 담겨있다. 특히 자기 길을 진지하게 가는 성격배우 윌렘 데포(플래툰, 잉글리쉬 페이션트)와 존 쿠삭(브로드웨이를 쏴라, 존 말코비치 되기)의 연기론 등은 그 울림이 크다.
‘연기라는 것은 단순히 삶의 모방이 아니다. 그것은 내 주위를 둘러싼 엷은 대기로부터, 나를 둘러싼 어떤 분위기로부터 뭔가를 창조해 내는 것이다.’(웰렘 데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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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륭한 연기자들 가운데는 부끄럼을 타는 내성적인 사람들이 많은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자신을 표현해야만 하는 알수 없는 힘에 이끌린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폭발해 버릴테니까. 배우라는 사람들은 평범한 삶이나 일상적인 기쁨에서는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종족이다. 그들은 좀더 깊은 욕망을 지니고 있다.’(존 쿠삭)
이들은 실패의 위험이 상존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꿈을 좇아 배우의 길을 택한 사람들이다. 그렇게 자신을 태운 열정이 성공과 부와 명예를 선사해준 것이다. 그들의 삶은 도스토예프스키의 말대로 ‘꿈을 밀고 나가는 힘은 이성이 아니라 희망이며 두뇌가 아니라 심장’임을 확인하게 해준다. 원제 Before They Were Famous(1999). 김수진 옮김.
허문명기자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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