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례로 이번 정상회담에서 부시 대통령이 ‘햇볕정책을 지지한다’고 한 것으로 양국 간의 이견이 해소되었다고 보는 시각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전후를 따져보면 미국이 햇볕정책을 추종한다는 뜻보다는, 한국의 대북 햇볕정책 추진을 간섭하거나 반대하지 않겠다는 해석이 타당하다고 본다. 왜냐하면 부시 대통령이 북한의 행동 여하에 따라 여러가지 옵션을 갖고 북한을 상대할 수 있다는 의지를 감추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미공조 뒤에는 인식차▼
한중일 순방 기간 중에 부시 대통령이 남긴 북한 관련 메시지는 크게 두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자유다. 부시 대통령은 ‘주민들의 굶주림을 방치하고 투명하지 못하며 외부와 단절된’ 북한 정권과 북한 주민을 분리하겠다는 입장을 천명했다. 즉, ‘악의 축’도 그 타깃을 북한 전체가 아니라 북한 정권으로 국한시켰다. 한국 정부가 김정일 정권을 상대로 대북정책을 추진해 온 것과는 거리가 있다. 한국 정부는 햇볕정책을 추진하면서 북한의 불량국가 명단 제외 문제를 요구하는 등 때로는 북한 정권의 입장을 대변해주고, 때로는 북-미간의 중재자를 자처하며 미국을 설득해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미국 대북정책의 초점이 북한주민에게 맞추어지면 우리 정부가 외면해온 탈북자, 납북자, 정치범 수용소 등 북한의 인권문제가 점차 주요 이슈로 부각될 것이다. 북한주민들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미국의 대북 식량지원 등은 지속되겠지만 금강산 관광 사업과 같이 용처의 검증이 불가능한 현금이 북한 정권에 유입되는 것은 한미간의 갈등을 초래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반 테러다. 부시 대통령은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및 미사일 개발 수출을 우려하며 범세계적인 억제 노력’을 촉구했다. 미국은 9·11 테러 이후 반 테러를 모든 안보 전략의 중심에 두었다. 북한은 KAL기 폭파, 아웅산 테러 등 테러 주도 전력이 있고, 핵 미사일 생화학무기 등의 테러 무기를 보유하고 있으며, 불량국가들에 대량살상무기의 기술을 이전 판매해 반 테러의 제1 경계대상으로 지목되었다. 햇볕정책 이후 한국 정부가 북한의 군사적 위협보다는 민족정서를 내세우면서 국민 사이에 안보 불감증이 확산된 것과는 대조된다.
반면 미국 정부는 ‘악의 축’ 발언 이후 쏟아지는 찬반 양론에 대해 일관성 있게 ‘증거가 있다’는 말로 응대해왔다. 최근 중동의 한 미사일 전문가는 북한이 이슬람 국가들에 대한 미사일 주 공급원이라고 발표했다. 또한 독일 언론은 북한의 미사일이 이라크로 수출되었다고 폭로했다.
미국은 북한의 핵, 미사일, 대량살상무기가 테러집단이나 불량국가에 유통되어 지역 분쟁, 나아가서는 세계 평화를 교란시키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
향후 미국의 대북정책은 ‘검증’과 ‘상호주의’의 원칙을 고수하며 ‘자유’와 ‘반 테러’의 명분으로 북한을 압박해 나갈 것이다. 김정일은 과연 미국이 내건 당근과 채찍 중 어느 것을 선택할 것인가. 그 선택에 따라 부시의 메시지는 초강경책으로 얼어붙을 수도 있고, 북한 경제부흥의 마셜 플랜으로 피어날 수도 있을 것이다.
▼美 전문가 올바로 기용해야▼
이번 부시 대통령의 동북아 순방에서 미일은 대북정책의 단일노선을 확인했다. 한미는 정상회담을 통해 서로의 입장이 무엇인지, 공통점이 무엇인지를 확인했다. 현 단계에서 우리가 한반도 평화와 남북 대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기 위해서는 한미일 공조에 흔들림이 없어야 한다.
우리 정부가 미국과의 시각차를 줄이고 국익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미국인들의 사고방식과 심중을 꿰뚫어 보며, ‘아’와 ‘어’의 차이를 분별할 수 있는 미국 전문가들을 적재적소에 기용해야 할 것이다.
이제 한미 공조가 저절로 이뤄지던 시절은 지나갔다.
김 정 원 세종대석좌교수·국제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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