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때는 오히려 한국 팀의 수비력 문제가 더 크게 부각되었다. 그러나, 그 후에 송종국, 유상철, 최진철 등을 축으로 한 중앙수비가 좋은 점수를 받기 시작했으며 김남일은 중앙 미드필드에서 기대 이상의 수비력을 보여주었다. 헌데, 이 김남일이라는 선수도 처음에 욕 꽤나 먹었다. 특히 체코와의 경기에서는 패배의 원흉으로 취급 받기도 했던 선수였다. 하지만 지난 골드컵에서 본 바와 같이 김남일이 빠진 중앙 미드필드는 수비력과 전체적인 조직력, 주도권 싸움에서 밀릴 만큼 그의 역할은 커졌다. 송종국이 수비의 핵심 선수로 평가 받을 만큼 성장한 부분도 큰 소득 중 하나이다.
지금은 예전보다 전체적으로 수비가 좋아졌다는 평가를 듣는다. 감히 '홍명보 무용론'을 언급할 만큼 우리의 수비진은 분명 향상되었다. 미들필드에서의 주도권 싸움도 잘하는 편이다. 특히 상대 팀의 수준에 따라 들쭉날쭉 하던 경기 운영이 어느 정도 우리 팀의 주도 하에 진행되는 것은 매우 큰 발전이다. 물론 그랬기 때문에 골 결정력 문제가 더욱 부각되었을 것이다. 골드컵 당시 우리 팀은 예선 기간 동안 극심한 컨디션 난조를 보였으며, 특히 순간적인 판단과 고도의 집중력, 냉철함, 그리고 감각적인 순발력을 필요로 하는 스트라이커들이 유독 무거운 모습을 보였다. 리그가 끝난 후의 장기간 합숙은 결국 체력 훈련과 팀 훈련 이상의 성과까지 기대하기는 무리였던 것일까? 역시 아쉬움은 지울 수가 없을 것 같다.
차라리 골 결정력 문제였다면 우리는 걸출한 스트라이커의 출현만 기다리면 된다. 문제는 우리의 약점이 그보다 훨씬 근본적인 부분에 있었다는 점이다. 강 팀과의 경기에서는 가진 것조차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는 꼴사나운 모습, 엷은 선수층, 미봉책으로 일관했던 대표팀 운영, 스스로에 대한 부정확한 진단과 평가, 국제적인 수준에 뒤떨어진 전술 운용 등… 지난 골드컵에서도 가장 크게 나타난 문제점은 좀처럼 고쳐지지 않는 위기 관리 능력과 경기 운영 능력이었다. 미드필드부터 확실하게 주도권을 거머쥐면서 경기를 대등하게 풀어 나가는 발전된 모습을 보이면서도, 팀의 중심 선수가 이탈하거나 컨디션이 떨어져 있을 때는 소위 '구멍'이 크게 나타난다. 그리고, 어처구니 없는 실점이라든가 너무나도 엉성한 슈팅으로 인해 승리를 놓쳐 버렸다.
전체적으로 볼 때 우리 팀의 현재 성적은 과거에 비해 나쁠 것도 없지만, 성적을 떼어 놓고 봤을 때는 분명히 향상된 모습을 보인다. 더구나 구성 단계부터 1.5군 이상의 전력을 기대하기도 힘든 상황이었던 점 등을 생각해 볼 때, 우리가 보여주는 대표팀에 대한 반응은 지나치게 비관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국이 미국을 적지에서 가볍게 격파할 수 있는지, 또 우루과이나 코스타리카, 멕시코를 그렇게 이길 수 있는지는 둘째로 치더라도, 그리고 '골 결정력 부족'이라는 해묵은 문제가 집중적으로 부각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에서는 향상을 보이고 있다는 점은 오히려 우리에게 희망적인 부분이다.
지금 유럽에서는 시즌이 한창이다. 그 때문에 유럽의 국가 대표 팀들이 최근의 평가전에서 좋은 경기를 펼치고 있다. 반면 한국 팀과 같이 시즌을 마친 후에 장기간의 전력강화 훈련을 하고 있는 팀들은 그 중간 과정에 있으므로 베스트 컨디션에는 미치지 못한다. 그러나, 우리는 현재 발전을 향한 단계를 밟아가고 있다는 점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 대표팀이 보여준 변화의 모습, 개선된 부분과 죽어도 개선되지 못했던 부분, 앞으로 남은 기간 동안에 향상될 수 있는 부분들에 대해서 좀 더 냉정할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 우리 대표팀은 현재 수준의 변화를 시도한 적도 없었으며, 지금처럼 소기의 변화와 발전을 보여준 적도 없었다. 이제서야 우리는 근본적인 문제점을 하나씩 고쳐가고 있으며, 그것은 고스란히 우리 대표팀의 전력으로 녹아 들어가고 있다. 그 발걸음이 생각보다 더디고 여러 가지 복합적인 문제점을 계속 노출시키고 있기는 하지만, 그것은 반드시 치러야 할 통과의례라는 생각이 든다.
월드컵까지는 채 100일이 남지 않았다. 그리 긴 기간은 아니지만, 그래도 우리에겐 비교적 준비 기간이 풍부한 편이다. 유럽은 현재 리그가 운영 중이며, 시즌이 끝난 후의 짧은 소집 기간을 거친 다음에 곧바로 월드컵에 출전해야 한다. 따라서, 준비 기간이 부족할 수 밖에 없다. 종종 벌어지는 다크 호스의 반란이라든가 강팀 답지 못한 느슨한 조직력 등의 현상은 여기서 발생한다. 우리는 리그 일정을 마친 지난해 말부터 대표팀 강화 작전에 들어갔으니 꽤 긴 시간을 할애 받은 셈이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과 기회의 일부분을 낭비하기도 했다. 히딩크와의 신경전으로 방향성을 흔들리게 하고, 아무개 선수 기용론/불가론 등으로 힘을 분산시켰다. 애당초부터 씨알이 별로 먹힐 것 같지 않았던 북한 선수 영입이라든가 외국인 선수의 귀화 문제는 여전히 빅 카드라도 되는 듯이 바라본다. 항상 결과 보다는 과정을 중요시 해야 한다면서, 우리 스스로의 냄비 근성을 욕하면서, 장기적인 계획을 세우고 그것을 꾸준히 추진하지 못하는 축구협회를 욕하면서, 다시는 황선홍을 욕하지 말자면서, 차범근을 매장했던 어리석음을 되풀이하지 말자면서… 우리는 또 다시 그 못된 습관을 되풀이 하고 있다. 크로아티아를 제압할 때는 '더 이상 유럽 징크스는 없다'고 득의양양 하더니, 골드컵을 마친 지금의 우리 모습은 어떤가? 3월에 있을 유럽 전지훈련에 나설 대표팀에게는 기대와 격려가 아닌 "요누무 시키들, 얼마나 하는지 두고 보자"라는 비꼬임마저 보내고 있다.
스스로 비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는지… 타인에게 책임을 물으며 비난하고 있지는 않는지… 냉정하게 준비하지는 못하면서 초조함과 불안감에 휩싸여 있지는 않는지… 선수들이 프랑스나 네덜란드와 싸우면서 보여줬던 초라함과 움츠림, 어리벙벙한 모습을 지금 우리 자신이 보여준다고 생각하지는 않는지…
10년이나 20년을 투자하지 못한 채, 우리는 1년 여의 다급한 기간을 달려왔다. 그리고, 이제 약 3개월의 시간이 남았다. 애초부터 현재의 대표팀 이상은 존재하지 않았지만, 그 안에서 해답을 찾기 위해 무던히도 애를 썼다. 소기의 성과를 올리기도 했고, 또 어떤 부분은 아직 풀리지 못한 채 우리를 초조하게 만들고 있다. 선수들에게 강인한 정신과 자신감, 그것을 몸으로 받아 들일 수 있는 경험이 필요하듯이 우리에게도 그런 과정이 필요하다. 1년 여의 시간은 고단하면서도 흥분과 기대, 그리고 실망이 교차되는 힘든 기간임이 분명했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현재 그 과정의 마지막 고비를 맞이하고 있는 셈이다.
용감해 지자. 우리는 역대 어느 때보다 많은 노력을 기울였으며, 또한 많은 성과를 얻었다. 그리고, 지금까지와는 비교할 수 없는 기회를 차지했다. 스스로 강해지기만 하면 된다. 대표팀을 나무라기 전에, 히딩크와 협회를 탓하기 전에, 어설픈 우리의 지식과 잣대로 채찍을 들기 전에, 그리고 우리의 동료들을 의심하고 그들에게 실망하기 전에… 우리 스스로 용감하고 의연한 모습을 찾았으면 한다. 결코 허황된 과장에서가 아니라, 지난 1년 여의 시간동안 공을 들이면서 이룩한 작은 성과에 대해 자신감을 한 번 가져보자는 것이다. 그리고, 아주 약간의 오기를 발동해 보자. 죽어도… 우리는 16등 안에는 들어야 속이 후련해 질테니까!
우리는 죽어도 16강 간다!
히딩크가 죽을 쒀도 간다!
산드로가 없어도 간다!
정몽준이 FIFA 회장이 되건 말건 간다!
월드컵 하루 전까지 대표팀이 중구난방 개판을 쳐도 간다!
자료제공: 후추닷컴
http://www.hooc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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