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즌이 한창인 프로농구 감독들도 어깨를 짓누르는 승부에 대한 심리적 중압감을 ‘피가 마르고 살이 타는 경험’이라고 표현한다.
오랜 코치생활 끝에 올해 첫 사령탑에 올라 리그 1위를 질주 중인 동양 오리온스 김진 감독(41)이나 유일한 30대인 유재학 감독(39·SK 빅스)은 현재 머리가 빠지는 ‘탈모증’으로 고심중이다. 또 지난 시즌 우승팀에서 플레이오프 진출마저 장담할 수 없게 된 김동광 감독(51·삼성 썬더스)은 편두통에다 스트레스로 체중이 6kg이나 늘었고 현역 최고령인 김인건 감독(58·SBS 스타즈)은 허리디스크로 한동안 고생했다.
비시즌 중 대부분의 감독에게 골프는 가장 대표적인 스트레스 해소법. 낚시에 일가견을 가진 신선우 감독(46·KCC 이지스)이 한가로이 세월을 낚는 것도 이 때다.
연륜에 따라 스트레스를 푸는 방식에는 많은 차이가 있다. 베테랑 감독들은 이제 자신만의 스트레스 해소법을 터득한채 여유가 있지만 초보 감독들은 여전히 스트레스를 안고 산다.
신구 세대를 대표하는 SK 나이츠 최인선 감독(52)과 동양 김진 감독을 통해 그들만의 스트레스 해소법을 알아본다.
▽최인선 감독〓프로농구 감독중에는 유난히 애견가가 많다. ‘개 사랑’ 문화의 전파자가 바로 최인선 감독. 최 감독은 기아(현 모비스) 감독시절이던 97년부터 팀 숙소에서 알래스카 썰매개인 ‘말라뮤트’를 키우기 시작했다. 당시 암수 새끼 두 마리를 구해 수컷은 캐는 농구의 ‘섀도우(Shadow) 디펜스’(그림자 수비)에서 이름을 따 ‘섀도우’로, 암컷은 우승기회를 잡겠다는 의미에서 ‘찬스’(Chance·기회)‘로 이름을 지었다. 잘지은 작명탓인지 결국 최 감독은 SK 나이츠로 옮긴 뒤 99∼2000시즌 챔피언에 오르며 기회를 잡았다. 찬스가 불의의 사고로 죽은 뒤 지난해 다시 구한 한 살짜리 레이(Ray·빛)는 ‘올해 다시 빛을 보겠다’는 뜻에서 붙인 이름.
1남1녀의 자녀를 키운 최 감독에게 시즌 중 섀도우와 레이는 사실상의 가족. 최 감독은 “10가지 정도의 말을 알아들을 만큼 영리해 가끔 사람보다 낫다는 생각을 할때가 있다”며 “기분이 좋을때나 나쁠때나 언제나 한결같이 대해주는 것이 시즌의 고달픔을 잊게 해 준다”고 말했다.
▽김진 감독〓코치시절 프로농구 최다 연패 기록인 32연패의 악몽을 고스란히 겪은 뒤 감독 데뷔 첫해에 1위를 질주중인 김진 감독은 평소 자동차 드라이브와 영화보기가 취미. 하지만 1년차 감독으로서 선수들과 갖는 시간을 최대한 확보하기 위해 이 마저도 접은채 한시도 선수단 숙소를 떠나지 않고 선수관리와 경기에만 집중했다.
이 때문에 얻은 것이 바로 머리카락이 한웅큼씩 빠지는 탈모증. 안되겠다 싶어 ‘훈련도 경기도 즐겁게 하자’고 마음을 고쳐먹었고 선수들에게도 항상 경기를 하면서 즐길 것을 주문했다. 하지만 머리카락은 계속 빠지고 스트레스는 풀지 못한 채 괴로운 시간이 이어졌다.
결국 생각해 낸 것이 산책. 하루 1시간 가량의 산책은 기막힌 효험을 가져왔다. 혼자서 호젓함을 만끽하며 용인시 고안리 체육관 인근 오솔길을 걷다보면 긴장이 눈녹듯 사라졌던 것.
김 감독은 “성적이 좋을 때 그 성적을 유지하기 위한 부담감이 질 때 당하는 스트레스 못지 않다”며 “그나마 다른 분들에 비하면 그나마 행복한 스트레스로 생각하며 위안을 삼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심야에 구단 홈페이지에 들어가 팬의 호응을 몸으로 느끼며 이메일에 답장을 보내는 것으로 활력을 불어넣기도 한다.
김상호기자 hyangs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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