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뮤지컬 '명성황후' 영국공연 얻은 게 더 많다

  • 입력 2002년 2월 26일 17시 53분


16일 뮤지컬 ‘명성황후’ 런던 공연 마지막회가 전석 매진에 기립 박수를 받고 귀국하자마자 솔트레이크 동계올림픽에서 날아온 ‘비보’를 접했다. 김동성 선수가 미국 아폴로 안톤 오노 선수의 ‘할리우드 액션’을 눈감아준 심판에 의해 실격된 것. 미국의 오만한 텃세에 국민들은 분을 삭여야만 했다.

2월1일부터 16일간 공연예술의 본산인 런던에서 ‘명성황후’가 선보였을 때도 일부 보수적인 영국 언론도 유사한 ‘할리우드 액션’을 보여줬다. “황후의 대수머리가 오토바이 배기통 같다”거나 “개고기를 먹는 나라에서 만든 뮤지컬” 등 편견에 가득찬 리뷰는 대영제국의 ‘문화적 쇼비니즘’을 극명하게 보여줬다.

그러나 혼신의 노력을 기울였던 100여명 스태프의 가슴을 아프게 했던 일은 정작 그것이 아니었다. 한국의 일부 언론이 이들의 악의적인 평가만을 과장해 전달하면서 “적당주의” “자만심” “기획력 부재”라고 지적했다는 소식 때문이었다. 영국인들이 한국 뮤지컬을 놀라워하며 박수를 아끼지 않았던 공연장 분위기를 보지도 않았으니 ‘할리우드 액션’에 속을 수밖에 없었을 터이다.

‘명성황후’가 혹평만 받았으리란 오해와 달리 현지 주요 언론과 공연 전문지들은 한국 뮤지컬의 연출력, 장대한 무대 그리고 이태원을 비롯한 전 배우들의 가창력에 놀라움을 표시했다는 것은 자화자찬이 아니다. 공연전문지 더 스테이지는 “스펙터클에 있어 영국 공연 계가 명성황후에서 한 수 배울 만하다”고 극찬했고, 선데이 텔레그래프는 ‘크리틱 초이스’(평론가들이 선정하는 우수 작품)로 명성황후를 선정했다. 글래스고 헤럴드는 “줄거리와 가사를 조금 손본다면 ‘레 미제라블’이 마침내 자리를 양보해야 할 것”이라고 평했을 정도다.

수치로 보더라도 19회의 공연은 성공적이었다. 7억원이 넘는 판매수익 대부분을 1만5000여명의 영국관객들로부터 얻었다는 사실은 97, 98년 미국 뉴욕과 로스앤젤레스 공연과 비교할 때 고무적인 일이었다.

무엇보다 이번 공연에서 얻은 가장 큰 성과라면 우리 뮤지컬이 무궁무진한 영어권 시장을 충분히 뚫고 나갈 수 있다는 자신감을 전 스태프가 얻고 돌아왔다는 점이다. 공연의 메카인 런던 웨스트 엔드에 진출할 수 있는 상품으로서 기본 시험에 통과했다고 자평한다.

물론 영국 신문들의 비판적인 평론 중에도 우리 공연예술을 세계화하는데 받아들일 지적이 있다. 그러나 주요 언론에서 큰 지면을 할애해 ‘명성황후’를 다룬 것은 ‘명성황후’가 최초로 현지에서 영어로 공연해 그네들의 작품과 당당하게 겨뤘기 때문이다. 몸으로 부딪치지 않고 얻을 수 있는 게 어디 있겠는가. 만약 이런 비판이 무서워서 우물안 개구리가 되라는 것은 “이번 동계올림픽에 미국 텃세가 심할 테니 아예 출전을 포기하라”는 주장이나 다름없는 일이다.

한가지, 이번 런던 공연에서 뼈저리게 느낀 것은 세계 속의 한국의 위상이 아주 초라하다는 것이다. 보수적인 영국 언론들은 뮤지컬 자체에 대한 온당한 평가보다는 일본인이 “야만인”으로 그려졌다는 식으로 시비를 거는데 급급했다. 일본의 ‘저팬파운데이션’이나 대기업들이 매년 2000건 이상 영국 문화예술 행사를 지원한 것도 작용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은? 안타깝게도 ‘전무(全無)’다.

윤호진 에이콤 인터내셔날 대표 '명성황후' 연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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