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자등록 명의 빌려주지 마세요"

  • 입력 2002년 3월 1일 17시 50분


회사원 이모씨는 최근 세무서로부터 1997년부터 체납된 부가가치세와 소득세 1400만원을 내라는 통보를 받았다.

사업을 한 적이 없어 부가세를 낼 이유가 없는 이씨가 세무서에 사정을 알아보니 매형에게 사업자등록 명의를 빌려준 것이 화근이었다. 이씨의 매형은 사업에 실패, 폐업신고를 한 뒤 잠적해버렸고 밀린 세금이 이씨 앞으로 부과된 것.

1일 국세청에 따르면 친척이나 친지에게 사업자등록 명의를 빌려줬다가 체납된 세금을 대신 물거나 신용불량자로 등록돼 금융거래를 정지당하는 사례가 끊이지 않고 있다.

5년 전 친지에게 명의를 빌려준 서모씨는 세금 2000만원을 부과 당했다. 서씨는 친지에게 세금을 빨리 내라고 독촉했지만 “돈이 없어서 못 낸다”는 답변만 듣고 있다. 서씨는 현재 신용불량자 명단에 올라 신용카드 사용을 정지 당했고 은행대출도 받지 못한다.

우유배달 등으로 어렵게 생활을 꾸려가는 김모씨는 95년 9월 성당 신도에게 사업자등록 명의를 빌려줬다가 99년말 체납된 세금 때문에 세무서로부터 집을 공매한다는 통지를 받았다. 김씨는 다행히 실제로 사업을 하지 않았다는 점을 인정받아 공매가 취소돼 최악의 사태는 피했다.

그러나 김씨처럼 운이 좋은 사례는 드물다. 현행 세법의 ‘실질과세원칙’에 따라 실제 사업을 하지 않았다면 구제를 받을 수도 있지만 이를 입증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더구나 실질과세는 어디까지나 원칙일 뿐. 명의도용은 보호하지만 명의대여는 보호하지 않는다는게 국세청 방침이다.

국세청 김재천(金載千) 납세자보호과장은 “사업자등록 명의를 빌려줬다면 뭔가 대가를 받았거나 사업상의 이익을 공유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라면서 “인정상 어쩔 수 없이 빌려줘야 할 때는 자신이 실제로 사업을 하지 않았다는 증빙자료를 꼭 챙겨둬야 한다”고 말했다.

천광암기자 i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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