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으로 본 세상]천재는 정말 정신질환자일까

  • 입력 2002년 3월 3일 17시 18분


존 내쉬
영화 ‘뷰티풀 마인드’가 인기다. 정신분열증을 앓은 괴짜 수학 천재인 존 포브스 내쉬의 일생을 그린 화제작이다.

정신분열의 세계를 묘사한 뭉크의 작품 '비명'

정신분열의 세계를 묘사한 뭉크의 작품 '비명' 낭만주의 시대 이래 천재를 정신질환자로 묘사하는 것은 문화적 유행이었다. 광기 어린 천재의 작품은 ‘천재적 예술혼’의 보증수표나 마찬가지다. 면도칼로 귀를 자르고 권총 자살한 반 고흐의 작품 ‘해바라기’는 사상 최고가인 3992만 달러에 경매됐다.

아인슈타인의 아들, 제임스 조이스의 딸, 칼 융의 엄마는 정신분열증을 앓았고, 슈만 포 카프카 비트겐슈타인 뉴턴 심지어는 다윈과 패러데이도 비슷한 증세를 보였다고 전기작가들은 기록하고 있다.

정말 천재와 정신질환은 관련이 있는 것일까? 다윈의 사촌인 프란시스 갈톤은 관련성을 연구한 최초의 인물이다. 우생학의 창시자이기도 한 그는 1869년 예술, 문학, 과학 분야 천재의 가족과 친척에게 정신질환이 많다는 논문을 발표했다.

그 뒤에도 관련이 ‘있다’ ‘없다’는 논문이 한 세기가 넘게 쏟아져 나와 논란이 계속돼 왔다. 최근 캐나다 브리티쉬 컬럼비아대 심리학자인 샬로트 와델은 이 논란에 일침을 가하는 논문을 발표했다.

와델 교수는 20세기 들어 창의성과 정신분열증, 우울증의 관련성을 연구한 논문 29편을 분석해 ‘관련성은 과학적 근거가 없다’고 결론 내렸다. 이 중 15편은 관계가 없다는 것이었고, 9편은 있다, 5편은 모른다 였다.

중요한 것은 논문의 숫자가 아니다. 대부분의 논문이 창의성, 정신질환을 모호하게 정의하고, 연구 대상을 구미에 맡게 골랐다. 명확한 개념 정의, 임의 추출법 등 과학적 연구방법론을 무시한 것이다.

천재와 정신질환 관련성은 ‘과학적 증거’가 없는데도 책과 영화가 정신질환을 천재의 운명으로 묘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예술가, 전기작가, 언론은 대중의 관심을 더 끌기 위해 일부러 그러는 경우가 많다. 에밀 졸라는 15명의 심리학자를 불러 자신에게 약간의 신경증이 있다는 것을 입증하려 애썼다. 한편 사회는 잔 다르크처럼 기존 질서를 무너뜨리는 위험한 천재를 미친 사람이나 마녀로 몰아 무기력하게 만들기도 한다.

정신질환을 천재의 운명으로 신비화되면서 정신질환이 창의성을 고양시킨다는 헛된 망상이 유포된다. 대부분의 정상적 천재가 연출된 괴짜 천재에 밀려 푸대접을 받기도 한다.

또 심각한 정신질환이 하찮은 문제로 둔갑한다. 미국에서는 거리를 헤매는 ‘홈리스’의 3분의 2가 정신분열증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노숙자의 절반 가량이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는 정신질환자와 알콜중독자다. 정신분열증 환자의 10%는 자살로 인생을 마감한다. 이들의 인생은 ‘뷰티풀’하지 않다. 과학으로 바로 볼 때다.

신동호기자 dong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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