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덕방]집값 하락 대비하자

  • 입력 2002년 3월 7일 17시 28분


고기정 경제부 기자
고기정 경제부 기자
89년에도 이랬다.

집값이 너무 올라 ‘급등’보다는 ‘폭등, 한걸음 더 나아가 집값 파동’이란 표현이 어울렸다. 일주일 사이 아파트값이 1000만원 이상 뛰었다. 당시 1000만원은 지금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높은 액수였다. 전세금이 올라 자살하는 사람까지 나타났다.

정부가 대책을 내놓았다. 국세청 세무조사가 시작됐다. 토지공개념도 도입됐다. 이어 수도권 5개 신도시 개발이 시작되고 청약제도를 고쳤다.

정부의 의지대로 집값은 꺾였다. 신도시 아파트가 입주를 시작하면서 91년 이후 3년간 집값은 하락세를 보였다.

13년 전 필름을 다시 돌리듯 올해 주택시장은 당시와 비슷하다.

집값 안정대책이 올들어 2번이나 발표됐다. 포장만 바뀌었을 뿐 내용은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다.

결과는 미지수다.

89년과 지금의 주택시장은 분명 다르다. 그때와 달리 저금리와 교육문제라는 외부 변수가 시장을 뒤흔들고 있다. 정부의 안정대책에도 두 변수를 제어할 방안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요와 공급에 의해 움직이는 시장원리는 그대로다. 89년에 신도시 건설을 발표했듯 이번에도 수도권 택지지구 추가 개발과 임대주택 건립 확대, 아산과 화성신도시 조성이 예고돼 있다.

수도권에서만 10만 가구가 넘는 공공아파트가 일시에 쏟아질 전망이다. 중소형이 대부분이다.

민간 부문의 공급도 수요에 부응해 발빠르게 대응했다. 작년에 건축허가가 난 다가구주택은 20만가구에 육박한다. 99년보다 두 배 이상 늘었다. 다세대주택도 241%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공급 증가는 시장을 ‘균형’으로 인도하고 있다. 서울시에 따르면 최근 다가구·다세대주택 중 임대용으로 나온 물량의 16%가량이 빈방으로 남아 있다. 작년처럼 월세가 극성을 부리지도 않는다.

전세는 집값의 선행지표다. 물론 당장 집값이 하락할 것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서울 강남을 중심으로 한 상승세는 수급보다는 다양한 사회적 요인이 결합돼 있어 쉽게 진정되지는 않을 전망이다.

하지만 공급이 늘고 있다는 점은 주택시장에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중요한 요인이다. ‘마른 날에 우산을 준비하라’는 말처럼 뛰는 집값을 추격하기보다는 시장을 곰곰이 따져보는 지혜가 필요한 시기다.

고기정 경제부 기자 ko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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