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염요?(웃음) 기른 게 아니라 자란 것을 그냥 둔 거죠. 시간나면 밀어야죠.”
영화감독 홍상수(43).
그의 이름 석자가 한국 영화계에서 지니는 ‘의미’와 ‘힘’은 독특하다. 1996년 데뷔작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은 로테르담 영화제에서 작품상을 수상했고, ‘강원도의 힘’(98년) ‘오! 수정’(2000년)은 칸영화제의 ‘주목할만한 시선’ 부문에 연속으로 진출했다. 하지만 ‘최고 흥행작’인 ‘오! 수정’조차도 10만명(서울기준)의 ‘낮은 턱’도 넘지 못했다. 좋은 비평에 마니아를 거느리지만 관객 수와는 연결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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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왜 홍상수일까. 22일 개봉하는 ‘생활의 발견’(18세이상 관람 가)으로 다시 올해 5월 칸 영화제에 도전하는 그를 만났다. 이 작품의 칸 진출 여부는 3월말이나 4월초에 결정된다.
#홍상수를 만나다
그의 수염은 신작 ‘생활의 발견’에 매달리느라 자기 생활을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영화의 제목은 수필가로 유명한 중국 린위탕(林語堂)의 에세이집에서 따온 것.
이 작품은 그럭저럭 얼굴이 팔린 배우 경수(김상경)가 6박7일간 여행하면서 겪는 짧은 로맨스를 그렸다. 경수는 무용가이지만 시를 쓰기를 원하는 명숙(예지원)과 교수를 남편으로 둔 유부녀 선영(추상미)과 차례로 만나 섹스를 나눈다.
“2년전 한 학생에게 ‘요즘 무슨 책을 읽느냐’고 물었다. 그 책 중 ‘생활의 발견’이 있었는데 뭔가 확 당기는 느낌이 생겨 제목으로 썼다. ‘오! 수정’이 기억의 부정확성을 주제로 남녀의 사랑을 그렸다면 이번 작품에서는 사랑에 대한 표현 방식과 감정이 묘하게 모방 또는 반복된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홍상수의 힘
임권택 이광모 박찬욱 강제규 곽경택 김기덕…. 작품성과 흥행 등 여러 이유로 국내외 영화계에서 주목받아온 감독들이다.
하지만 홍상수는 그 누구와도 닮지 않았다. 홍상수는 홍상수일 뿐이다. ‘생활…’도 그렇다. 이 작품은 한 남자가 모처럼 떠난 여행지에서 ‘사건’을 기대하는 것처럼 있을 법한 이야기를 매우 일상적으로 담아냈다. 이전 작품들처럼 약간의 소음을 빼면 아예 음악과 멋진 화면 연출은 없다.
“내 작업은 내가 갖고 있는 느낌을 정확하고 간결하게 전달하는 것이다. ‘살집’을 빼고. 가급적 만든 사람(감독)의 손을 가능한 영화 속에서 지우고 싶다. 음악과 뭐, 영상미학이란 걸 쓰는 것은 내 기질에 맞지 않는다. 한마디로 내가 돈 벌려고 뭔가를 흉내내는 것은 어색하다.”
이 작품은 배우들이 완성된 시나리오없이 대략적인 상황만 숙지한 상태에서 매일 현장에서 홍감독이 쓴 ‘A4 대본’으로 촬영이 진행됐다. 이 작품은 감독과 배우들이 거의 떨어지지 않고 함께 밥 먹고, 술 먹고, 잠 자면서 찍은 생활의 결과인 셈.
#홍상수를 발견하다
짓궂은 ‘기자 끼’의 발동일까. 남은 시간은 그를 말할 때 ‘특별하다’는 복합적인 뉘앙스의 비밀을 찾는 데 공을 들였다.
“영화가 홍감독 자신의 얘기 아니냐는 말이 있다.”
“순수하고 완벽한 상상력은 없다. 내 작품의 바탕에는 내가 보거나 듣거나 경험한 것이깔려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내 얘기란 말은 아니다. 23세 때 내가 겪은 사랑과 삶의 이야기가 엄청나게 드라마틱한 것 같아서 시나리오를 쓰려고 했지만 1년 끙끙거리다 결국 포기했다.”(홍감독)
“영화를 보면 사랑은 짧고 생활은 긴 것처럼 느껴진다. 당신도 사랑에 대해 시니컬한 것 아닌가.”
“사랑은 좋은 말이다. 사람은 살면서 누구나 경수처럼 로맨틱한 사랑에 빠지고 싶은 것 아닌가. 지고지순한 사랑을 부정하는 게 아니다. 그런 사랑을 하려면 대단한 운과 능력,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홍감독)
“술, 배우 욕심은 유명한 데.”
“배우에 관한 한 좋은 배우를 만나 운이 좋은 편이다. 술은 3년전 눈에 포도막염이 생겨일주일에 사흘로 줄였다. 하지만 여전히 폭주파여서 고생을 많이 한다.”(홍감독)
김갑식기자 gs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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