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가까운 세월을 농구 코트에서 함께 보낸 그들에게 요즘처럼 이 말이 뼈저리게 들린 적은 없을 듯 하다. 프로농구 동양 오리온스의 단짝 콤비 전희철(포워드)과 김병철(가드). 29세 동갑내기인 이들은 아마 올 시즌을 영원히 잊지 못할 것 같다. 단순히 프로에서 처음으로 정규리그 1위라는 기쁨을 맛봤기 때문은 아니리라. 정상에 오를 때까지 과정이 결코 순탄하지 않았고 둘이 힘을 합쳐 가시밭길을 헤쳐 나왔다는 성취감이 컸다. 그래서 정규리그 우승을 확정짓고는 손을 맞잡고 눈시울을 붉히기까지 했다.
영화 ‘친구’의 포스터에 나오는 ‘함께 있을 때 우린 아무 것도 두려운 것이 없었다’는 문구대로 그들 역시 그랬다. 처음 한솥밥을 먹었던 서울 대방초등학교 때 팀을 정상으로 이끈 뒤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각자의 길을 걸었지만 고려대에서 다시 뭉쳐 최강의 콤비로 이름을 날렸다. 대학 졸업 후인 1996년에는 나란히 신생 동양에 입단, 창단 27일만에 아마추어 코리안리그 우승을 맛봤고 프로 출범 후에도 팀을 2년 연속 4강으로 견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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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들이 군 입대를 마치고 팀에 복귀한 지난 시즌 우승후보라는 예상과 정반대로 오히려 최하위에 그치는 수모를 당했다. “농구하면서 꼴찌라고는 난생 처음이었어요.”
줄곧 엘리트 코스만을 밟으며 승승장구했던 전희철과 김병철은 처음으로 실패의 쓰라린 상처를 입었다. 게다가 팀의 추락과 함께 이들은 불화설에 시달려야 했다. 서로 ‘내가 잘났다는 듯’ 나서다보니 모래알처럼 흩어졌다는 얘기가 돌았다. 급기야 누구 하나는 팀을 떠나야 한다는 차가운 시선을 받기도 했다. 김병철은 “구설수에 오르다보니 아예 외출도 하지 않고 두문불출했다”고 아픈 기억을 떠올렸다.
명예회복을 다짐한 전희철과 김병철은 올 시즌 초반부터 팀이 선두로 치고 나섰을 때 마냥 즐거울 수만은 없었던 것이 사실. 운동하면서 처음으로 ‘수비에만 치중하라’는 코칭스태프의 지시에 따르느라 화려한 플레이와는 거리가 멀었다. 스포트라이트는 신인 김승현과 외국인선수 힉스, 페리맨에게 쏠렸다. 속이 상해 ‘농구할 맛이 나지 않는다’는 푸념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팀을 위해서라면 나를 버릴 수 있다’는 생각에 궂은 일에 치중했다. 예전에는 경기가 끝나면 자신의 득점을 확인하기 바빴지만 어느새 수비에서 마크맨을 몇 점으로 묶었는가 서로 비교하기에 이르렀다. 공격할 때 내가 덜 넣더라도 상대 득점을 줄이면 마찬가지가 아니겠느냐는 의식의 전환을 가져온 것. 시즌이 중반을 지나면서 이들은 공격에도 가담해 김병철은 정교한 3점슛과 속공의 위력을 떨쳤고 전희철 역시 신장의 우위를 이용해 내외곽에서 공격을 이끌었다. 동양이 정규리그 1위에 오른 원동력으로 팀 창단멤버인 전희철과 김병철이 스타의식에서 벗어나 궂은 일부터 먼저 했던 대목을 꼽는 목소리가 높은 것도 당연해 보였다. 동양 김진 감독 역시 “싫은 내색도 별로 없이 묵묵히 잘 견뎌줘서 고맙다”며 “둘은 우리가 정상을 차지하는 데 밑거름이 됐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전희철과 김병철은 이제 정규리그 우승의 기쁨은 잠시 접어두기로 했다. 앞으로 다가올 플레이오프와 챔피언결정전을 거쳐 진정한 승자로 우뚝 서기 위해 힘을 합치겠다는 각오. 지난해 8월 전희철의 부러운 시선을 받으며 결혼한 김병철은 6월이면 태어날 아기에게 우승반지를 선물로 줄 꿈을 꾸고 있다. 전희철 역시 결혼을 전제로 사귀고 있는 한 살 아래 애인에게 우승반지와 함께 프로포즈를 할 계획이다.
“모두 10개 팀이 있으니 10년에 한번 우승하면 되는 셈인데 늦었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운동하면서 가장 힘든 시기를 견뎌냈기 때문에 어떤 어려움도 문제없어요.”
비 온 뒤 땅이 굳어지듯 더욱 가까워졌다는 전희철과 김병철의 환한 얼굴에서 강한 자신감이 보였다.
▽전희철이 본 김병철
“키는 작지만 볼 핸들링과 드라이브인 등 개인기가 국내선수 가운데 단연 최고다. 기본기가 탄탄한 것도 큰 장점이다. 약점이던 수비도 나아졌다. 볼을 가지고 있지 않을 때 움직임이 적은 게 흠이고 드리블을 할 때 시간을 많이 끄는 편이다.”
▽김병철이 본 전희철
“포스트와 외곽 플레이에 모두 능한 것이 장점이다. 상대편에게 수비 부담이 되는 강력한 공격력을 갖췄기 때문에 함께 뛰다보면 내가 반사이익을 누릴 수도 있어 편하다. 다만 불같은 성질을 잘 다스려야 한다. 워낙 다혈질이어서 때론 경기를 망칠 때도 있다.”
용인〓김종석기자kjs012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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