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중반부터 눈이 침침해져 책이나 서류를 볼 때 간혹 돋보기를 쓰는 김 이사는 사장실에 결재를 받으러 들어갔다가 무심코 주머니에서 돋보기를 꺼냈다.
그러자 사장이 깜짝 놀라며 한마디 하는 것이었다.
“아니 젊은 사람이 벌써 돋보기를 써?”
속으로는 “저도 내일 모레면 환갑입니다”라는 말이 나오려고 했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그랬다간 ‘그럼 이제 그만 집에 가서 푹 쉬어’라고 할까봐 얼른 ‘우리 회사 조명에 문제가 있다’고 둘러댔죠.”“자연광이 차단된 인조등만으로 된 사무실은 문제가 있느니, 어쩌고저쩌고 해 곤혹스러운 사태를 피했지만 임원은 나이도 마음대로 못 먹는 자리인 것 같다”고 말한다.
흰머리가 뒤덮인 지긋한 나이에 중후한 인상. 임원 하면 떠올리기 쉬운 이런 이미지가 임원의 트레이드마크이던 때는 지났다. 멀찍이 후방에 앉아 전투를 지시하는 게 아니라 이젠 그 자신도 현장에서 열심히 뛰어야 하는 전투원의 처지. ‘노병(老兵)’은 능력과 무관하게 퇴출 0순위로 찍히기 십상이다.
많은 임원들은 그런 생각 때문에 나이든 사람으로 비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쓴다.
특히 김 이사처럼 오너가 40대 중반의 2세 경영인이면 더욱 신경이 쓰인다. 아무래도 자기보다 나이든 부하직원은 부리는 사람 입장에서도 마음이 그리 편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서다.
40대 후반인 A사 박모 이사는 나이에 비해 유난히 흰머리가 많은 머리카락에 자주 손길이 간다.
단골 이발소에서 석 달에 한번 정도는 꼭 염색을 한다.“염색을 안 하면 백발인데, 괜히 나이보다 늙어 보일 필요 없잖아요.”
박 이사는 “성형외과에 가서 ‘보톡스 주사’를 맞는 임원도 주변에 있다”고 전했다. 6개월에 한번씩 이 주사를 맞으면 이마 주름이 펴진다고 하는데 매우 아프다고 하지만 장래를 위한 ‘투자’라는 생각에 기꺼이 감수한다는 것이다.
박 이사는 “임원은 자신의 생사여탈권을 쥔 사장의 직접적인 가시권 안에 들어 있다. 그러니 하위 직급에 비해 이미지 관리에 엄청나게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요즘 성형수술을 받는 기업 임원이 적지 않은 것도 그러고 보면 미용의 차원보다는 눈물겨운 ‘생존형’에 가깝다는 얘기다.
이명재기자 mj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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