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우룡/블랙홀에 빠진 위성방송

  • 입력 2002년 3월 13일 18시 15분


3월 1일 개국한 ‘스카이라이프’ 위성방송이 겉돌고 있다. 위성방송의 개국은 역사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그러나 많은 전문가들이 예측한 것처럼 방송혁명은 전혀 일어나지 않고 있다. 혹자는 화면이 깨끗하고 음질이 좋을 뿐만 아니라 집안에서 홈쇼핑은 물론 정보검색까지 할 수 있는 위성방송을 ‘똑똑한 TV’라고 부르고 있지만 이런 추세라면 방송계에 어떤 빅뱅도 일어날 것 같지 않다.

▼콘텐츠 부실해 시청자 외면▼

무선전파를 이용한 공중파 TV는 기술적 제한으로 채널이 KBS, MBC, SBS 등 몇 개밖에 없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케이블 TV가 도입되었다. 케이블 TV의 최대 장점은 채널이 늘어나고 영상이 보다 선명하다는 것이다. 미국 연방 방송통신위원회(FCC) 위원이었던 니컬러스 존슨은 케이블 TV를 ‘나이애가라 폭포’에 비유했다. 이제 케이블 TV도 한계에 도달했다. 위성방송의 시대가 활짝 열리고 있기 때문이다. 위성 TV는 디지털 방송신호를 이용하기 때문에 고화질, 고음질, 다기능을 자랑한다. 채널은 수백개로 늘어날 수 있다. 공중파 TV를 제주의 천제연폭포에 비유한다면 위성 TV는 세계 최대인 남미의 이과수폭포에 비견할 만하다.

결국 TV는 공중파에서 케이블로, 다시 케이블에서 위성으로 발전해 왔다. 위성 TV는 그 경제성과 서비스 내용에 있어서 가장 이상적인 방송이라고 할 수 있다.

위성방송이 본 방송을 개시한 지 오래인데 왜 ‘TV의 신세계’는 전혀 보이지 않고 있을까. 문제의 핵심은 볼 것도 없고, 보는 사람도 없다는 점이다. 위성방송사업 운영 주체인 플랫폼 사업자 선정 때부터 이미 예견됐던 일이다.

위성방송은 철저한 비즈니스인데 공공성, 공익성의 논리를 앞세워 컨소시엄을 구성했다. 한국통신, KBS, MBC 등 공공기관들이 대주주로 참여함으로써 경영의 효율성은 애초부터 기대하기 어려웠다. 한국통신은 위성체를 직접 소유·운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사업주체로서 적절치 못했고, KBS와 MBC는 좋은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일에만 참여했어야 했다. 더욱이 공중파 방송의 시청료 수입이나 광고수입을 프로그램 향상을 위해 재투자하지 않고 위성방송에 쏟아 붓고 있음은 비판받아 마땅한 일이다.

위성방송의 표류는 무리한 사업계획에서 시작되었다. 세 번이나 개국 일자를 연기하고서도 제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음이 이를 입증한다. 예상 가입가구 수나 예상매출액 역시 지나치게 부풀려져 있었다. 당초 2002년 50만가구 가입에 1187억원의 수입을, 2003년에는 113만가구에 약 3000억원을, 2005년에는 275만가구에 7800억원을 전망했다. 그러나 현재 스카이라이프를 보는 사람은 1만명도 채 안 된다.

위성방송은 준비가 너무 소홀했다. 수신기가 없거나 있어도 기능이 미비해 위성 TV의 진가를 맛보지 못 하고 있다. 게다가 방송사 안팎으로 분란이 계속되고 있어 경영부실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다.

위성방송의 활로는 기존 방송과의 차별화에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른바 위성방송의 진수를 보여줄 특유의 내용이 없다. 물 퍼붓듯 쓴 홍보비는 예산낭비의 인상이 짙다.

초기의 새 매체는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좋은 프로그램이 없는데 시청자들이 가입할 리 없고, 채널사업자의 경우 시청자도 없고 돈도 되지 않는데 과감한 투자를 하기도 어렵다.

지금 위성방송은 혼란에 빠져 있다. 시청자들은 위성방송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 또한 필요성도 느끼지 못하고 있다. 전자상거래, 문자정보 등 각종 데이터방송까지 갖추고 있지만 그 장점과 특색을 제대로 알고 있는 가입자가 드물다. 이들에게는 혼란스럽기만 하다.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는 데 실패한 셈이다. 채널이 많은 것이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다. 140여 개의 채널이라고 허장성세를 부릴 일이 아니라 몇 개라도 꼭 보고 싶은 채널로 만드는 유인책을 제시해야 한다.

▼좋은 프로그램 개발 급선무▼

새로운 매체의 보급에는 기술, 국민의 경제수준, 정책, 사회적 수용성이라고 하는 요건이 제대로 충족되어야 한다. ‘스카이라이프’의 정착에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무엇보다 좋은 프로그램이 많이 나와야 한다. 위성방송을 국민에게 제대로 알리는 일 역시 급선무다. 아울러 제 기능을 다하는 수신장치를 저렴한 가격이나 무상으로 보급할 수 있어야 한다.

김우룡 한국외국어대 정책과학대학원장·언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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