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눈]막스 카스/전자 민주주의는 꿈인가

  • 입력 2002년 3월 13일 18시 16분


시민의 직접적인 정치 참여는 인류가 어떻게 삶을 조직하고 정치 제도를 구성할 것인지를 처음 떠올린 이래 줄곧 주요한 현안이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한 국가들 수준만큼의 민주주의를 이루는 것도 너무도 어려운 일이었다. 직접 민주주의란 유토피아적인 생각이거나 기껏해야 극히 작은 도시 안에서만 이뤄질 수 있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민이 상호 소통하고 정치에 참여하며 능력을 발휘하고 책임을 지는 직접 민주주의의 이상은 숱한 정치 사상가들의 마음 속에 항상 살아있었다.

▼정보공개-다수참여 등 이점▼

의사소통 없이 민주주의는 있을 수 없다. 시민과 정치 제도를 연결하는 데 의사소통은 필요불가결하다. 시민과 정치 지도자들이 현장에서 정기적으로 대화하는 것은 도시 단위의 민주주의가 확립됐던 그리스 시대에서나 이뤄졌음직하다. 이 또한 도시보다 큰 국민국가가 출현하는 순간 사라지고 말았다.

현대에 와서 대의 민주주의 형태가 나타났고 대표성을 가진 정부가 규범적 제도적으로 시민의 정치 참여를 요구하면서 매스컴이 의사소통의 매개로 전면에 등장하게 됐다.

매스컴에 의한 소통은 일방적이었다. 시민들은 대개 신문, 라디오, 텔레비전으로 내용을 제공받는 소비자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러한 일방적 의사소통은 인터넷이 구현하는 전자 네트워킹에 의해 큰 변화를 맞고 있다.

전자 네트워킹이 정치 제도나 정당 구조, 시민과 정치권 사이에 이뤄지는 담론의 질, 특정 관심사를 정치 이슈화할 수 있는 가능성 등에 미치는 영향은 작지 않다.

인터넷 덕분에 시민과 정치 지도자 사이의 사려 깊은 의사소통이 과거 어느 때보다도 현실화 단계에 근접한 것처럼 보인다. 많은 사람들이 전자 민주주의 혁명으로 과거 아테네가 누렸던 직접 민주주의로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이상할 것이 없다. 하지만 이를 어떻게 실현하느냐의 문제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

우선 직접 민주주의 절차로 어떤 합의를 도출하는 것은 작은 규모의 공동체에서나 적용되는 것이지 국가적 규모에는 적용되기 어렵다.

국민투표를 실시하기는 하지만 영토 문제나 헌법 수정 같은 극히 제한적인 문제들에 한해 실시되고 있을 뿐이다.

직접 민주주의는 구조적 약점이 있다. 더욱더 복잡해지는 정치 사안을 폭넓게 검토해야 할 필요성에 부응하기 어렵고 정치적 사안의 내용을 전혀 모르거나 잘 모르는 시민들이 참여하는 문제도 있다. 그리고 무엇이 직접투표의 대상인지를 결정해야 하는 문제도 있다.

스위스는 직접 민주주의 절차를 어느 정도까지 확대할 수 있을지, 직접 민주주의 이점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는 이상적인 실험 무대였다. 결과는 공적 예산과 부채가 줄었고, 공공업무는 효율적이었으며 탈세는 줄었다.

하지만 소수의 권익 문제에 대해서는 분명한 이점이 없다. 특히 미국은 (주민 발의에 의한) 직접 민주주의가 소수의 권리를 침해하기 쉽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요약하면 직접 민주주의는 효율성과 정치적 결정의 합법성을 강화할 수 있긴 하지만 한편으로는 사형제도, 낙태, 소수의 권익 보호 같은 윤리적 문제에 대해서는 좋은 결정을 내리지 못한다.

전자 네트워킹이 직접 민주주의의 이러한 모호한 부분을 보완할 수 있는가.

특정 사안을 투표로 결정하려면 대중 사이에 최대한 이 문제가 서로 소통돼야 한다. 또 시민들은 정보를 충분히 습득해야 한다. 이는 결코 쉽지 않다. 전자 네트워킹은 분명 시민들의 정보 접근 가능성을 높인다. 그러나 정보의 양이 많다고 시민의 정보 습득과 정보 소화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

▼소수보호 위한 검증있어야▼

특정 사안에 대해 대중이 잘 알고 이를 소통하려면 시간이 걸린다. 스위스가 생명공학 문제를 국민 투표에 붙이는 데 6년이나 걸렸다는 것이 한 예다.

국민 직접 전자투표 지지자들은 투표로 결정하는 사안의 수를 연간 20∼30건으로 제한하고 싶어한다. 하지만 독일 국회는 1년에 150건 정도의 입법안을 다룬다. 이 숫자만큼 국민투표에 붙이기엔 사안의 수가 너무 많다.

전자 민주주의가 실현 불가능하다는 말은 아니다. 전자 민주주의를 통해 대의 민주주의 체제를 더 좋은 것으로 만들려면 철저하고 구체적인 검증과정이 따라야 한다는 말이다.

막스 카스 독일 브레멘대 인문사회대 교수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