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방형남/닭과 달걀의 전쟁

  • 입력 2002년 3월 14일 18시 04분


인간은 어디까지 잔인해질 수 있을까. 점점 잔혹해지고 있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유혈분쟁이 인류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지난 주 동예루살렘에서 전송된 외신사진은 너무나 충격적이다. 이스라엘 경찰이 자살폭탄테러 용의자인 팔레스타인 청년을 붙잡아 팬티만 남기고 옷을 벗겨 엎드리게 한 뒤 처형하는 장면을 차례로 찍은 사진을 보고 몸서리를 치지 않은 사람이 있었을까. 나흘 뒤에는 도살장의 돼지나 소처럼 거꾸로 매달려 처형된 팔레스타인 청년을 찍은 사진이 전송됐다. 팔레스타인 측은 이스라엘군을 도운 배신자를 처단했다고 밝혔다.

▷양측의 분노 또한 인간성의 한계를 넘어선 것 같다. 팔레스타인은 ‘자살무기’로 복수를 한다. 이스라엘인들이 몰려있는 곳에서 폭탄을 터뜨려 자살하는 팔레스타인 젊은이들. 자살테러로 죽으면 천국에 올라가 신 바로 다음의 영예를 얻을 수 있다는 믿음 때문에 몸을 던진다는데 정신이 온전한 상태에서 자폭하는지 믿기 어렵다. 여대생까지 자살테러에 합류해 세계를 놀라게 했다. 이스라엘의 분노는 무자비한 복수로 표현된다. 최근에는 유대인과 팔레스타인인의 사망비율이 1 대 3으로 줄었으나 몇 년 전만 해도 유대인 1명이 죽으면 팔레스타인인 12명이 살해될 정도로 이스라엘의 보복은 무자비했다.

▷양측의 분쟁은 ‘이스마엘이 살라를 죽이고, 아무리는 이스마엘을 죽이고, 이스마엘의 동생은 아무리를 죽이고…’로 끝없이 이어지는 ‘피의 족보’를 만드는 것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2000년 9월 팔레스타인의 인티파다(봉기) 이후 계속되고 있는 충돌만 대상으로 삼아도 벌써 양측에서 1800여명이 숨졌다. 피의 족보에 연루되지 않은 유대인과 팔레스타인인을 찾기 어려울 정도라 한다. 공격과 보복의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으니 유대인이 자랑하는 지혜의 왕 솔로몬이 다시 태어난들 어떻게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를 규명하겠는가.

▷이성을 잃은 듯한 양측의 싸움을 막는 길은 외부세계의 개입뿐이다. 12일 유엔안전보장이사회가 즉각적인 휴전을 요구하면서 처음으로 팔레스타인을 독립국가로 인정하는 결의안을 채택해 그 가능성을 제시했다. 중동사태에 관해 가장 영향력이 큰 미국이 결의안에 찬성했고 이스라엘도 환영 성명을 발표했다. 극과 극은 통한다고 했던가. 두 차례나 노벨평화상을 배출한 이-팔분쟁이 다시 ‘평화의 꽃’을 피우기를 기대한다.

방형남 논설위원 hnbh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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