튀니지는 북아프리카 마그레브 3국인 튀니지, 모로코, 알제리 가운데 가장 작은 나라다. 예전에는 지리학적으로 매우 중요해 지중해의 패권을 다투었을 정도로 번성한 왕국이었다. 지금도 많은 이들이 카르타고와 고대 페니키아인들이 해상교역에 종사했던 도시를 방문해 당시의 감회를 만끽하기도 한다. 또한 지중해의 쪽빛 푸르름을 이고 있는 아름다운 해변부터 사막의 오아시스 등 흥미로운 장소가 즐비하다.
습도가 높은 지중해성 기후인 튀니지의 북부 지방은 로마시대에는 ‘로마의 곡창’으로 여겨졌을 만큼 비옥하다. 북서부는 초원지대와 풍요로운 농촌 풍경이 이어지고, 남부의 스텝지대에는 올리브 등 작물이 재배된다. 여기에 알제리의 사막지대로 이어지는 지방은 대추야자가 여기저기서 자라고 오아시스의 아름다운 풍경이 이어진다. 이렇듯 조그마한 나라에 다양한 기후가 존재하기에 더더욱 매력적인 나라가 바로 튀니지다.
튀니지의 모체가 되는 도시는 그 유명한 카르타고. 기원전 9세기 무렵 지금의 튀니지만(灣)의 도시국가이기도 했던 카르타고는 페니키아계 식민도시의 하나였고, 좋은 항구와 비옥한 땅을 갖고 있어 교역도시의 구실을 톡톡히 해낸 곳이다. 유리한 해양 입지 덕분에 페니키아의 시민도시로 번영했지만, 로마와의 끝없는 전쟁으로 피폐해지고 결국 포에니 전쟁으로 로마군에 멸망했다.
현재 튀니지의 수도는 튀니스. 서구의 모던함이 돋보이는 신시가지와 더불어 옛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구시가지가 함께하는 매력적인 장소다.
내가 여정을 푼 곳은 튀니스의 신시가지인 ‘하비브 부르기바’ 거리였다. 튀니지의 초대 대통령 부르기바 대통령을 기념해 명명된 것이다. 이 거리에는 유행의 최첨단을 걷는 의상실과 카페들이 즐비하고 도로 중앙은 가로수 밑으로 걸을 수 있도록 조경이 돼 있어 운치를 더해준다. 도심의 심장부답게 관청, 호텔 등과 오래된 프랑스 빌딩이 줄지어 있고, 도로변 카페나 프랑스 과자점으로 인해 한층 유럽적인 분위기를 풍긴다.
내가 튀니스에서 보고 싶은 곳은 옛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다는 ‘구시가’(메디나)였다. 메디나는 튀니스의 역사적·문화적 중심지로 이 도시의 삶을 느끼기에 좋은 곳이다. 이곳에 가려면 신시가지인 ‘하비브 부르기바’ 거리에서 곧장 서쪽으로 뻗은 프랑스 거리의 막다른 곳에 자리한, 튀니스의 신시가지와 구시가지를 구분짓는 ‘프랑스 문’을 통과해야 한다.
이 문은 메디나(Medina)가 건설되던 8세기에 처음 세워졌다고 하는데 지금 남아 있는 것은 1848년에 세워진 것이라고 한다.
▲구시가지 메디나 ‘삶의 향기’ 물씬▼
튀니스 중심지의 모던함과 달리 구시가는 어두컴컴하다. 이름 모를 강렬한 향신료 냄새와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 오래된 시가지인 만큼 골목마다 옛 정취로 가득하다. 처음 형성된 시기는 아랍인들이 이곳을 정복한 7세기 말경이다. 그 후 12세기경 ‘이프리키야’(튀니지의 옛 국명)의 수도가 되면서 튀니스는 이슬람 세계에서 가장 강대하고 부유한 도시 중 하나로 성장했다. 그 때 골격이 이루어진 것이 지금의 메디나인데, 크기는 동서 약 800m, 남북 약 1600m라고 한다. 거리의 면적은 작지만 남아 있는 기념물들은 화려했던 과거의 영광을 말해주는 듯 그 자태를 뽐내고 있다.
메디나는 튀니스의 호수와 세조우미 호수 사이에 있는 좁고 긴 땅 위에 자리잡고 문화적·역사적 중심지 구실을 해왔다. 그러던 이곳이 사양길에 접어든 것은 프랑스인들이 몰려들기 시작한 20세기 초쯤으로, 새로운 침입자들이 동문 옆으로 새로운 신시가지를 건립하면서 구시가는 도시의 상업 중심지로서의 역할을 상실했다.
메디나에서 눈에 띄는 건물은 시장으로 둘러싸인 수많은 모스크(이슬람 사원) 가운데 튀니스의 성역이라고 하는 ‘지투나(Zitouna) 모스크’다. 튀니스의 많은 모스크 중 백미라 일컫는 ‘대모스크’ 또는 ‘지투나 모스크’는 시장 중심부에 자리잡고 있었다. 우아하고 세련된 첨탑과 색색의 타일로 고운 자태를 뽐내고 있는데, 햇빛이 비치는 시간마다 그 빛을 달리해 보는 이를 더욱 즐겁게 해준다.
대모스크를 둘러싸고 자리한 시장에는 향수 제조 공장, 서점, 비단 가게, 보석상, 향신료상 같은 가게들이 즐비하게 들어서 있다. 넓은 시장이 어지럽게 분포돼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몇 바퀴 돌고 나니 그 나름대로 질서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마치 백화점처럼 업종별로 지역이 나뉘어 있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수세기 동안 거의 변하지 않은 곳이 유명한 ‘케시어스 시장’(Souq des Chechias)으로 아직도 전통적인 붉은색 펠트 모자를 만들고 있다. 한쪽에서 열심히 모자를 만들고 있고 상인은 그 모자를 가득히 쌓아놓고 손님을 부르고 있다. 북아프리카 지역으로 나가는 수공예품의 대부분이 이곳에서 생산된다고 한다.
시장의 번잡함은 우리와 비슷하지만 이들은 절대 서두르는 법이 없다. 알라의 기도 시간이면 일을 놓고 기도하는 사람들, 시장 한귀퉁이에 앉아 어린이들을 상대로 바그다드의 요술을 부리는 마술사도 있고, 땀흘리며 열심히 아름다운 아라비아 무늬의 양탄자를 짜는 이들도 있다. 마치 시계침이 중세에 머문 듯한 느낌이다. 튀니스는 한마디로 서구의 근대성과 옛 아랍 세계가 공존하는 그야말로 그림같이 아름다운 도시다. 차도르를 입고 눈만 내보이며 다니는 여인들이 있는 반면 발랄하게 청바지를 입은 여성들이 함께 지나다니는 도시. 이것이 모순된 모습으로 보이기보다는 이 세계에서의 나름의 조화로 보였다.
< 글·사진/ 전화식(Magenta International Press) > magenta@kornet.net
◇ Tips
▷마그레브(Maghreb)
리비아, 튀니지, 알제리, 모로코 등 아프리카 북서부 일대를 가리킨다. 아랍어로 동방(東方)에 대한 서방(西方)을 뜻한다. 7세기 말부터 이슬람 왕국의 흥망성쇠를 되풀이하며 형성되었고 현재도 교통·통신·무역· 관광 등을 목적으로 마그레브 정신을 살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튀니지(Tunisia)
정식 명칭은 튀니지공화국(Republic of Tunisia)이며 수도는 튀니스다. 공용어로는 아랍어를 사용한다. 북쪽과 동쪽은 지중해에 면하고 서쪽은 알제리, 남동쪽은 리비아와 국경을 접한다.
▷지투나(Zitouna) 모스크
튀니스에서 가장 유명한 모스크의 하나로 아름답게 장식된 사각형 첨탑이 특징이다. 7세기에 세워진 자리에서 9세기에 재건된 건물로, 지은 사람들은 로마 카르타고의 유적에서 가져온 200개의 기둥을 이용해 중앙 예배당을 지었다. 비(非)이슬람 교인들은 적당히 옷을 갖춰 입으면 정원까지 입장이 가능하다.
▷차도르
이슬람교도 여성이 타인에게 얼굴을 보이지 않기 위해 쓰는 망토. 보통 무늬 없는 검은빛의 것이 많다. 종교적으로 더욱 엄격한 경우에는 머리 전체를 싸매고 눈 부분에 레이스를 대어 겨우 앞만 볼 수 있게 하기도 한다. 종교상의 이유뿐 아니라 차도르를 걸치면 속에 입는 옷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널리 착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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