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익스피어 연극 ‘리처드 3세’를 본 18세기의 천재 한 사람이 누군가로부터 ‘연극이 재미있었느냐’는 질문을 받자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극중 인물들이 춤출 때 총 5202번 스텝을 밟았고 배우들이 말한 단어는 모두 1만2445단어였다.”
디지털 시대는 어쩌면 이 천재가 말했다는 숫자의 시대일지 모른다. 평균 80평생을 살며 겪는 모든 체험을 디지털 버전으로 바꿔 입력하는데 필요한 플로피 디스크가 7142조8571억4286만 개라고 하니 말이다. 바야흐로 모든 것을 이처럼 수치화 할 수 있는 세상에서 이제 측정 불가능한 것은 과학적이지 못한 것으로까지 인식되고 있다.
이 책은 그러나, 인간이 갖고있는 숫자에 대한 집착이야말로 우리가 삶의 진실을 제대로 못보게 하는 걸림돌이라고 말한다. 다름아닌 ‘숫자의 횡포’다.
결혼 당사자들의 개인적 정열과 배신의 스토리가 결혼 통계 자료에 묻히듯, 2차대전때 희생자들인 홀로코스트 희생자수 역시 600만명이라는 숫자 속에 실종돼 버린다.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모든 것을 수치화하는 동안 정말 중요한 인간의 마음, 행복, 상상력, 창의력 등이 가려지고 있다는 것이다.
19세기 당시 세계에서 가장 문명화되었다는 런던조차 인구조사가 없었다고 한다. 적어도 몇 명이 사는지 조차 몰랐다는 이야기다. 이후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을 소망했던 제러미 벤담, 하수시설의 숫자를 측정해 보건 행정을 획기적으로 바꾼 에드윈 채드윅, 런던 시민의 빈곤도를 숫자와 색깔로 표시해 사회복지의 큰 걸음을 내딛게 했던 찰스 부스, 양차 대전 중에 국가 회계라는 숫자정책으로 승전의 기틀을 마련했던 존 메이나드 케인스, 지구환경보호를 위해 환경비용을 숫자로 표시하자고 제안한 데이비드 피어스 등 역사적 인물들의 노력으로 ‘카운팅’이 시작됐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카운팅에 중독돼 수량화된 데이터가 포함하고 있는 수치의 이면을 꿰뚫어 볼수 있는 혜안을 잃어 버렸다.
만약 학교선생님들이 커트라인에만 치중해 아이들을 합격시키는 데에만 노력을 한다면 그 아이들보다 못한 아이는 일방적으로 희생당할 것이다. 병원에서 의사가 간단히 치료할 수 있는 질병에만 집중한다면 대기자 리스트의 숫자는 줄어들겠지만 실질적인 의료서비스는 향상되지 않는다. 실업자 통계수치에서도 현재 일을 안 하고 있는 사람의 숫자만 보여줄 뿐 실제로 일하고 싶어하는 숫자와는 무관하다.
저자의 결론은 이렇다. ‘정말로 중요한 것은 계산될 수 없다. 하느님이나 인생 등을 측정할 수 없는 것처럼 행복도 측정하지 못한다. 성공을 계산하는 단 하나의 측정잣대를 벗어날 수 있다면 우리는 좀더 진실에 가깝게 다가설 수 있다.’
허문명 기자 angelhu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