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세대 사이에서도 요시모토 바나나에 대한 평판은 엇갈리는 듯하다. -처음 소개된 ‘키친’은 정말 매혹적이었어. 그렇지 않니? -그래, 비극이 바탕에 깔려있으면서 따뜻한 사람들의 정이 배어있고. -슬픔마저도 색색의 무늬로 아름답게 수놓아진, 그 세계 속으로 뛰어 들어가고 싶은 느낌이 들더군. -그런데 그 다음 작품들은 별로였어. 가족관계나 이성관계가 너무 심하게 비틀어지고 꼬여있고 말야. -신비적인 느낌도 처음엔 좋았는데, 나중에는 너무 ‘컬트’야. 악마주의랄까. 우리 코드와 맞지 않았어. -내 느낌도 그래. 초기 ‘키친’같은 하얗고 아기자기한 세계로 돌아갈 수는 없을까?
그런 의견을 가진 독자라면, 최신작인 ‘하드보일드’ 와 ‘하드 럭’ 두 편의 중편은 ‘오래 기다리던 선물’로 받아들여질 듯하다. 근친상간이나 유사종교 등 지나치게 자극적인 ‘양념’이 배제돼 담백한 맛을 내고, 상실의 아픔을 표현하는 내면의 독백이 좀더 달콤한 맛을 내는 점에서 저자는 ‘키친’에서 보여준 손맛을 거의 비슷하게 재현한다.
‘하드보일드’는 외진 시골을 여행하던 중 꿈 속에서 화재로 잃은 옛 연인을 만난다는 이야기. 호텔에서 극약 자살한 여인의 으스스한 이야기가 여기 얽혀든다.
‘하드 럭’은 과로로 뇌사상태에 빠진 언니를 간호하다가 언니 약혼자의 형과 사랑에 빠져들게 되는 스토리. 한 사람을 세상과 작별시키는 슬픔과, 수수께끼같은 사랑에 빠져드는 달콤함이 교차한다.
언니의 호흡보조기를 떼기 전날, 사무실에서 아빠와 언니 짐을 옮긴 뒤 주인공은 차안에서 아빠에게 기대어 눈물을 흘리며 이야기를 나누다 자기도 모르게 되뇌이고 만다. ‘어라, 또 좋은 시간을 보내고 말았다. 언니는 마냥 농도 짙은 시간도 주었다. 좋은 시간이 백 배 더 좋아진다. 하루하루가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전쟁이었다.’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그 독백은 바나나 문학의 핵심을 이루는 것으로 비쳐진다. 슬픔마저 마냥 견딜수 없을 정도로 달콤한, ‘농도 짙은’ 청춘의 시간을 그는 펼쳐보인다. 그럼으로써 “내게도 이런 시간이 있었을 법 한데, 다시 그런 때가 주어진다면! 못견디도록 슬프더라도.” 라는 독자의 독백을 받아내고야 마는 것이다.
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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