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낳는 행위는 ‘성(性)행위’만큼이나 은밀하다. 먹고 입고 자는 것처럼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행위이지만 지극히 사적인 행위라서 정보유통이 완전하지 못하다. 그런 점에서 우선 책 제목이 눈에 띈다.
그러나 이 책은 흔히 만나는 육아관련 지침서가 아니다. 저자는 ‘출산’과 ‘임신’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인간이 얼마나 다르고 같은가를 설명하고 있다. 유럽에서 아프리카까지, 로마시대부터 20세기 말까지 인간의, 여성의 가장 사적이고 은밀한 임신, 출산, 육아 행위를 다양한 생활 풍속과 문화를 통해 분석한 인류학적 보고서라 할 수 있다.
우리는 ‘출산’하면 누워 있는 산모부터 떠 올리지만 이것은 의사들이 분만실에 들어오면서부터라고 한다. ‘눕는 출산’은 산모보다 의사가 편한 자세다. 실제로 17세기 이전만 해도 거의 모든 문화권에서 산모들은 의자나 다른 사람 무릎위에 앉아서 혹은 꿇거나 웅크린 자세로 아기를 낳았다고 한다. 선 채로 땅 바닥에 그냥 떨어 뜨리는 문화권도 있었다.
탯줄이나 태반을 처리하는 방식도 제 각각이다. 유럽에서는 정원에 묻고 그 위에 장미를 심었으며 중국에서는 잘 씻어서 병에 넣어 한달 동안 말렸다가 양지바른 곳에 묻었다. 뉴기니섬에서는 높은 나무에 매달았고 중세 유럽에서는 산모가 영양보충을 위해 먹었다.
수유방식도 다르다. 한쪽은 기질이 사납고 한쪽은 부드럽기로 유명한 뉴기니섬의 두 부족이 대표적인 경우. 사나운 문두구모르족 여자들은 서서 젖을 먹이면서 아기배가 부르기도 전에 젖을 떼어 버린다. 아기는 발버둥을 치면서 젖을 급하게 빠는 버릇이 생긴다. 수유를 통해 분노와 투쟁을 가르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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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에 아라페슈족 엄마들은 젖꼭지가 아기 입안에서 가볍게 떨리도록 흔들어 주고 아기귀에다가 숨결을 불어 넣거나 살살 긁어 주기도 하고 발가락을 간질이기도 한다. 두말할 것도 없이 이런 방식은 부드럽고 다정한 인간형을 만든다.
책을 번역한 나은주씨(프랑스 소르본 누벨대학 박사과정)는 “이 책이 주는 가장 큰 교훈은 ‘상대성 학습’”이라며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지극히 단순한 인간의 생성 규칙인 출산과 육아가 이렇게 다양하고 독창적이고 터부가 많고 상징적 의미가 많다는 사실을 인식하니 새삼, 인간과 세상이 더 폭 넓게 보였다”고 말했다.
그러나, 저자들은 단순히 다양성을 나열하는데 그치지 않고 있다. 이른바 문명사회임을 자부해온 서구 육아법이 20세기 초까지 얼마나 많은 시행 착오를 거듭하면서 실수와 잘못을 저질러 왔는 지 자기반성으로 나아 가고 있다.
‘많은 인류학자들은 어린 시절 내내 엄마 등에 업혀 있고 어린 왕처럼 대접받는 아프리카 아이들이 무척 행복하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나이지리아, 르완다, 말리처럼 세계에서 유아 사망률이 가장 높은 나라가 실은 사회적으로 아이를 가장 귀하게 여기는 나라이기도 하다. 따라서 선진국에서 선호하는 아기의 모습, 즉 잘 먹이고 예쁘게 입히고 부모와 떨어진 방에 서 따로 자는 아이가 반드시 세계에서 제일 행복한 것은 아니다.’
오늘날 서구 엄마들은 기존의 위생적, 의료적 육아법을 버리고 울 때마다 젖을 물리고 마사지를 해주고 업거나 안는 동양적 방식을 선호한다고 한다.
허문명 기자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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