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망 소식을 전한 하이델베르크 시정부는 정확한 사망 원인과 사망 시간은 밝히지 않았다. 19세기의 마지막 해에 태어나 20세기를 풍미했던 대철학자가 세상을 떠난 데 대해 20세기까지 세계 철학계를 선도했던 독일 철학계는 담담하게 받아들이며 애도하는 분위기다.
가다머는 1960년 그의 이론을 집대성한 역저 ‘진리와 방법’을 발표하면서 빌헬름 딜타이 류의 전통적인 방법론적 해석학을 넘어서 철학적 해석학을 정립했다. 마르틴 하이데거의 직계 제자인 그는 하이데거뿐만 아니라 니콜라이 하르트만, 에드문트 후설 등 당시 세계 철학계를 주도하고 있던 독일 철학자에게서 철학수업을 받으며 플라톤, 아우구스티누스, 헤겔 등 서양 철학 전통의 다양한 요소를 결합한 자신의 철학을 완성했다. 그의 철학적 해석학은 특히 과학기술문명의 범람으로 위기에 처한 현대사회에서 정신과학으로서의 인문학이 왜 우리의 현실에서 필요하며, 왜 복원돼야 하는가를 일깨워줬다.
그는 1937년 마르부르크대, 1938년 라이프치히대, 1946년 프랑크푸르트대 교수를 거쳐 1949년부터 1968년 정년 퇴직까지 하이델베르크대 교수로 재직했다. 그는 재직시뿐만 아니라 퇴직 후에도 철학논쟁을 주도하며 건재함을 보여줬다. 1960년대 초반 에밀리오 베티와의 논쟁은 타당한 이해와 그릇된 이해의 구분 기준에 관한 철학계의 기념비적 논쟁이었고, 1960년대 말부터 1971년까지 수년에 걸친 위르겐 하버마스와의 논쟁은 전통의 연속성을 강조하는 그의 해석학을 둘러싼 철학의 보수성에 관한 논쟁이었다. 1981년에는 자크 데리다와 함께 실체의 형이상학에 관한 전통적인 철학사적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가다머 철학을 전공한 고려대 김창래 교수는 “가다머에 대해 상대주의자 또는 보수주의자라는 오해가 있으나, 그는 그보다도 근원으로서의 역동적인 실체를 인정한 플라톤주의자였다는 점에서 서양철학사의 정통을 잇고 있다”고 평가했다.
김형찬기자 kh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