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서태지 데뷔 10주년 대담 "신세대 혁명 이끈 뮤지션"

  • 입력 2002년 3월 17일 17시 21분


《1990년대 한국 대중 문화를 한마디로 정리하면 ‘서태지’다. 올해는 ‘서태지와아이들’이 데뷔한 지 10주년. 이들은 92년 3월 29일 KBS2 ‘젊음의 행진’에서 첫음반 ‘난 알아요’로 데뷔했다. 며칠 뒤 4월초 MBC ‘특종 TV 연예’에서도 한낱 ‘돌연변이’로 여겨졌던 이들은 한달도 채 안돼 ‘신세대 혁명’의 기치를 올렸다. 이후 3장의 음반과 96년 1월 은퇴, 96년 서태지의 솔로 컴백으로 ‘서태지 문화’는 여전히 진행중이며 ‘태지 마니아’들은 사회 문화적 세력으로 뮤지션권리찾기 등을 펼치고 있다.음악평론가 강헌씨(40)와 서태지로 인해 음악에 눈을 뜨고 관련 책 ‘서태지를 읽으면 문화가 보인다’를 쓴 강명석씨(홍익대 산업공학과 4년·26)가 대담을 나눴다.》

강명석(이하 석)〓2000년 MBC ‘서태지 컴백쇼’의 구성 작가로 활동할 때 서태지를 처음 만났다. 카리스마가 넘치는 인물로 생각했는데 실제로는 끊임없이 자기 음악에 대해 묻고 있었다. ‘저런 거인도 불안해하나’라며 의아해했다.

강헌(이하 헌)〓94년 3집 ‘교실 이데아’때 계간지 ‘리뷰’기사를 위해 8시간 인터뷰한 적이 있다. 인터뷰 도중 마치 40대 작가와 마주한 기분일만큼 그는 자기 주장에 대해 막힘이 없었다. 그 인터뷰 기사를 읽은 독자들이 ‘서태지가 그렇게 지적으로 말했을리 없고 필자가 각색했을 것’이라고 의심했다. 대중문화와 팬, 스타의 본질에 한국 사회 특유의 천박한 선입견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석〓90년대는 사회적 패러다임이 바뀌었던 시기다. 서태지는 더 나아가 음반마다 신세대의 존재와 철학, 행동의 패러다임을 바꾸었다. 1, 2집에서는 신세대의 등장과 확고한 개념화를 시도했고 3, 4집에서는 표현의 자유까지.

헌〓서태지는 한국 사회에서 ‘딴따라’가 갈 수 있는 위상의 최대치를 개척했다. 서울대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교육 때 ‘교실 이데아’를 틀었는데 2000여명이 한꺼번에 따라 불렀다. 세상이 바뀌었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물론 서태지는 돌출된 존재가 아니라 80년대 선배로부터 많은 유산을 물려받았다. 신세대 문화도 70년대 청년, 80년대 하이틴 문화에 이어진 것이다. 또 서태지는 공고 중퇴자이고 사회적 마이너리티(소수)다. 그같은 마이너리티 정신도 사회적 비판 정신이 정점에 달했던 80년대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다.

석〓서태지는 음반마다 다른 ‘이데아’를 제공했으나 강요하지 않았다. 그는 이데아를 노래하면서 엔터테인먼트적인 재미를 줬다. ‘하여가’의 록과 춤의 어울림, ‘발해를 꿈꾸며’콘서트의 현란한 무대 등이 그런 것이다.

헌〓서태지를 시작으로 뮤지션이 쇼 비즈니스의 부속물이 아니라 독립된 존재로서 자리잡게 됐다. 서태지는 또 서구 장르의 직접 상륙을 견인했다. 이 점에 대해선 공과가 있는데 예를 들면 ‘교실 이데아’에서 미국 하드코어 밴드‘비스티보이스’적인 요소가 있는 것은 옥의 티다. 물론 서태지 이후 90년대 가요가 미학적 독창성이 결여된 채 서구화됐지만 그 책임을 전적으로 서태지에게 물을 수 없다.

석〓서태지는 음악을 위해 기획사를 차리고 초상권을 관리하는 등 음반 산업을 지배하려 했다. 그러나 이후 서태지의 기획이나 행동(음반 활동 뒤 잠적) 등이 히트 요건이 되면서 한국의 음반 자본은 그뿐만 아니라 립싱크 등도 용인했다. 서태지 이후 대중음악계가 아티스트와 상업적 가수로 양극화된 것도 그 때문이다.

헌〓서양의 예술사를 보면 ‘혁명의 시대’ 이후 매너리즘이 오랫동안 이어지고 다시 혁명이 시작된다. 서태지가 혁명이었음에도 한국의 음반 시장이 그 결실을 맺지 못한 것은 이후 마케팅 논리에 매몰됐기 때문이다. 서태지는 집에서 눈총받으며 기타 연주를 연마한 마지막 세대다. 조용필도 아직 맹렬히 연습한다. 이런 장인정신이 문화를 살린다.

석〓서태지 이후 10대는 볼거리 위주의 음악으로 돌아섰고 20대는 그런 음악에 무관심했다. 사실 한국 대중문화에서 표현의 자유가 열린 게 10년도 안된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서태지의 주장은 현재진행형이라고 봐야 한다.

헌〓그런 점에서 대중매체의 문제도 있다. 대중매체가 외면하면 시장 속의 예술은 홀로서기 어렵다. 미국의 매체들은 새로운 음악에 대해 담론을 이끌어내며 신세대와 아버지 세대와의 역사적 문화적 고리를 제시했는데 한국의 매체들은 세대 격차만 부각시켰다. 신세대는 하늘에서 떨어진 게 아니다. 또 서태지의 ‘신비주의’라는 것도 매스컴이 왜곡한 게 아닌가. 가수가 음반내고 활동하고 쉬는 게 당연한 일이다.

석〓당시 서태지 팬이었던 나같은 이들이 세상을 조금씩 바꿀 것이다. 당시 팬들은 ‘환상속의 그대’로 서태지를 좋아했으나 이제는 생활 속에서 서태지의 의미를 되새기고 있다. 이들은 서태지를 통해 세상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서태지의 의미는 끊임없는 자기 존재에 대한 질문이다. 그게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본다.

허 엽기자 he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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