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달리기 본능’은 농경사회에 이어 산업사회로 변화하는 등 삶의 양식이 바뀌면서 점차 퇴보하고 말았지만 최근 마라톤 붐을 통해 되살아나는 느낌이다. 마라톤은 선진국형 스포츠라고 한다. 1인당 국민총생산(GNP)이 높은 나라일수록 아마추어 마라토너가 많다. 우리도 90년대 이후 마라톤 인구가 급증하면서 현재 30만명에 이른다. 시간에 쫓기는 현대인들이 달리기에 몰두하는 것은 우선 건강 때문이다. 그러나 각자 마라톤을 시작하게 된 사정을 들어 보면 복잡한 인간사만큼이나 사연도 많다.
▷‘멀리 골인 지점이 보였다. 마지막 힘을 다해 발놀림을 계속했다. 근처 어딘가에 가족들이 기다리고 있을 텐데. 순간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남편과 아이들이 나를 향해 힘을 내라고 외치고 있었다. 갑자기 감정이 복받치고 눈물이 솟구쳤다. 뭔가 서러운 느낌이었다.’ 건강이 좋지 않던 가정주부가 고된 훈련 끝에 마라톤 대회에 출전하고 코스를 완주한 뒤 쓴 수기의 일부다. 사업 실패, 실직, 가족의 위기를 마라톤을 통해 극복해 냈다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마라톤은 인간 한계에 도전하는 운동이기 때문에 여느 스포츠에서 볼 수 없는 숙연함과 감동이 있다.
▷봄을 알리는 국민적 행사로 자리잡은 동아마라톤대회가 어제 서울에서 열렸다. 전문 선수들의 뒤를 이어 환호성을 지르며 거리를 질주하는 아마추어 마라토너들을 보면서 겨우내 움츠렸던 가슴이 확 트이는 듯한 청량감이 느껴졌다. 첨단으로 치닫는 세상에서 어쩌면 가장 원시적인 스포츠인 마라톤에 사람들이 매료되는 것은 왜일까. 그것은 현대의 삶이 야기하는 긴장과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과거의 ‘달리기 본능’으로 돌아가는 것도 한가지 방법임을 보여준다. 그러고 보면 과거의 것에서 현대의 해법을 찾는 것은 어느 시대에나 통하는 보편의 진리가 아닌가 싶다.
홍찬식 논설위원 chansi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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