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구자룡/´홍길동 노조원´

  • 입력 2002년 3월 19일 18시 09분


‘홍길동 한 명당 500만원의 현상금.’

19일로 파업 23일째에 접어든 한국전력 산하 5개 발전자회사 노조는 노조원들이 하고 있는 ‘투어(tour) 파업’을 ‘홍길동 작전’이라고 부른다.

‘투어 파업’은 4, 5명씩 조를 짜 집에도 가지 않고 전국으로 흩어져 휴대전화로 연락하면서 진행하는 파업 방식. 전력노조가 이번 파업에서 처음 선보였다.

노조는 지하철 등에 뿌린 4쪽짜리 컬러 유인물에서 ‘한국이 노동운동사의 새 장을 펼치고 있다’고 자화자찬하기도 했다. 경찰은 이들 자칭 ‘홍길동’ 가운데 핵심 24명에 대해서는 1명에 500만원씩의 현상금을 내걸고, 검거 경찰관을 1계급 특진시키기로 했다.

산업자원부의 한 고위간부는 “그들을 잡지 못하는 것은 법이 공권력의 손을 묶고 있기 때문이지 그들이 ‘홍길동의 재주’를 갖고 있어서가 아니다”고 항변했다. 발전 5개사가 경찰에 고발한 노조원 400여명의 혐의는 업무방해여서 휴대전화 감청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전국을 돌아다니는 그들을 추적할 수 없다는 것.

그러나 한가하게 ‘홍길동 이야기’를 하기에는 전력사고에 대한 불안감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꼭 파업 때문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분당화력, 월성원자력, 울산화력발전소 등에서 최근 잇따라 발전이 중단됐다. ‘예비 전력이 충분하니 1개월은 문제없다’던 산자부나 발전회사측도 차츰 초조함을 드러내고 있다.

노조원의 20%가량만 복귀한 상황에서 평소의 60% 기술인력만으로 발전기를 돌리고 있는 데다 전력 비수기에 반드시 해야 할 보수 점검을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력산업 구조개편에 따라 발전 5개사와 함께 분사한 한국수력원자력회사 노조는 19일 ‘동조 파업’ 여부를 투표에 부쳤지만 불과 5.6%만이 투표에 참가했다. 과거 한솥밥을 먹던 노조 동료들이 ‘홍길동’에 대해 동감을 표하지 않은 것이다.

이는 더 이상 ‘대형 전력 사고’를 볼모로 파업을 계속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충고해주는 것이 아닐까.

구자룡기자 경제부 bon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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