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정용덕/´유종근 비리´가 남긴 것

  • 입력 2002년 3월 20일 18시 15분


비리 의혹의 사실 여부를 놓고 한동안 공방을 벌이던 유종근 전북지사가 마침내 검찰에 의해 구속되었다. 세풍월드라는 한 기업의 핵심 간부로부터 두 차례에 걸쳐 모두 4억원의 대가성 뇌물을 받은 혐의 때문이다. 유 지사는 대가로 그 기업이 그의 관할 지역 내에 국제자동차 경주대회를 유치하고 경주장을 건설할 수 있도록 인허가를 포함하여 제반 행정적 지원을 해주었다고 한다. 세풍월드는 97년 전후 짧은 기간에 무려 7개의 중앙부처와 2개의 지방자치단체에 걸친 인허가 과정을 일사천리로 통과함으로써 대 정부 로비 면에서 저력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곧 이어 발생한 외환위기 때 부도로 파산하는 바람에 모든 것이 백지화돼버려 경영효율성 면에서는 부실하기 그지없는 기업이었다.

사실 여부는 법원이 최종적으로 가릴 일이지만 구속만으로 이미 치명적인 타격을 입은 한 사람의 정치인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이유는 ‘넘어진 말을 또 걷어차는’ 심보에서가 아니다. 이 사건이 우리나라 민주주의 발전을 열망하는 많은 시민들의 우울증을 자아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지방 토착비리 잇따라▼

유 지사 사건은 지방자치 발전에 대한 시민들의 열망에 또 한 차례 찬물을 끼얹고 있다. 지난해 역시 수뢰혐의로 수원시장이 구속되었고, 며칠 전에는 경기지사의 수뢰 사건이 다시 대법원에 의해 유죄로 인정돼 고법으로 환송되는 일이 있었다.

이들의 경우는 비교적 최근에 발생한 일이기 때문에 특히 눈에 띄는 것일 뿐 지방자치제 부활 이후 지난 몇 년간 발생한 수많은 부정부패 가운데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이것이 30여년 간에 걸쳐 줄기차게 지방자치제의 부활을 주창하고 중앙기능의 지방분권화를 지지해 온 많은 민주 시민들의 눈앞에 전개되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더욱 어처구니가 없는 것은 이와 같은 혐의를 지닌 유 지사가 여당의 대통령 후보 경선에까지 출마했었다는 사실이다. 아니 그와 같은 혐의 때문에 오히려 대선후보 경선을 정치적 보호막으로 이용하려고 출마했다는 세간의 소문에는 그저 아연실색할 뿐이다. 소문대로라면 마치 부실기업들이 오히려 은행돈을 마구잡이로 빌려 몸집을 부풀림으로써 위기를 모면하려는 이른바 ‘대마불사’ 전략을 쓰려 했던 셈이 되는 것이다.

여당인 민주당은 소위 ‘국민참여경선’이라는 새로운 제도를 도입해 대선후보를 선정하는 과정에 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인기가 저조했던 여당이 시민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데 크게 성공하고 있다는 보도다. 그러나 그 경선 과정을 둘러본 시민단체 관련자들에 의하면, 선거인단에 대한 향응과 매표 등 여전히 구태의연한 선거운동 방식이 전개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몇 년간 보통선거에 의한 정권 교체의 실현이라는 의미에서 정치적 민주화가 크게 진전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민주화가 진전됨에 따라 정부의 정책 자율성은 오히려 감소되고 있는 모습이다. 원론대로라면 민주화의 진전에 따라 집권 정부의 정당성이 높아지고, 그러면 정부가 높은 정당성을 바탕으로 좀 더 자율적이고 중립적으로 정책을 소신있게 추진할 능력도 증대될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이 간단한 이치가 우리나라 현실에서는 부합되지 않고 있는 것이 문제다.

그 주된 원인 가운데 하나는 중앙이든 지방이든 선거 과정에서 막대한 정치자금이 동원되기 때문이다. 선거과정에서 막대한 정치자금이 소요되는 한 그리고 그것을 현재와 같이 사회의 일부 재력가에게 의존하는 한 집권정부의 정책 자율성은 그만큼 낮아질 수밖에 없을 것임은 불을 보듯 뻔한 노릇이다.

▼지자체 뿌리내리기에 찬물▼

여야당의 후보 경선 과정이 시작됨에 따라 이미 대선을 향한 화살은 시위를 떠나고 있다. 대통령 후보 경선에 의해 빛이 가려져서 그렇지 지방선거는 좀더 목전에 다가와 있다. 그러나 선거자금의 투명성과 공정성 문제는 대부분의 관심 밖에 있는 것 같다. 이것이 이 나라 민주정치의 현 수준이다.

그러나 어떻게 해서든 금년 지방선거와 대선 과정에서는 이 문제가 가장 중요한 쟁점으로 부상하도록 해야 한다. 그렇게 해서 이 문제가 정리되지 않으면 다음의 집권정부도 각종 부패 스캔들로 인한 국정의 마비현상을 면하기 어렵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정용덕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행정학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