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최화경/금태(金太)

  • 입력 2002년 3월 20일 18시 15분


동해에선 예로부터 명태가 지천으로 났다. 겨울 바다에 그물을 내리면 살이 통통하게 오른 명태가 그득하게 잡히곤 했다니까. 대관령 진부령이 바빠지는 것도 이때쯤이었다. 첫눈이 내릴 즈음이면 바람이 잘 통하는 곳마다 덕을 세우고 명태를 내걸어 겨울바람에 말렸다. 이렇게 해서 이듬해 초봄이 되면 명태가 노르스름한 빛깔을 띠는데 이것이 바로 황태다. 그 맛이 얼마나 고소하고 담백한지 예나 지금이나 술꾼들은 속풀이국하면 황태국을 최고로 친다. 실제로 명태엔 간장을 해독하고 노폐물을 배출하는 성분이 많다니 숙취를 푸는 데는 그만이다.

▷명태라는 단어는 조선조 효종 3년인 1652년 ‘승정원일기’에 처음 보인다. 그 이름의 유래가 재미있다. 함경도 관찰사가 초도순시를 나섰다가 명천군에 들러 태(太)씨 성을 가진 어부 집에서 점심을 들었는데 반찬으로 오른 생선 맛이 아주 좋았던 모양이다. 그래서 이름을 물었더니 모른다고 하기에 명천군의 ‘명’자와 어부의 성을 따 명태라고 지었다는 얘기다. 그러나 명태 이름이 어디 하나뿐인가. 겨울에 나는 명태는 동태, 봄 명태는 춘태, 그물로 잡으면 망태, 낚시로 잡은 것은 조태다. 또 있다. 생명태는 선태, 말리면 북어, 어린 새끼는 노가리가 된다. 선태 한가지만 놓고도 다른 이름이 19가지나 있을 만큼 선인들의 명태사랑은 지극했다.

▷사실 명태만큼 버릴 것 없는 생선이 또 있을까. 내장은 창난, 알은 명란이라고 하여 젓갈로 담그면 맛이 일품이다. 또 간에는 비타민 A와 D가 많이 들어 있어 눈에 좋다고 한다. 바로 간유다. 옛날 두메산골 사람들은 눈이 침침하면 가까운 바닷가로 내려가 명태를 물리도록 먹었다. 그러고 나면 거짓말처럼 눈이 밝아졌다는데 바로 간유 덕분이다. 명태가 흔했다고 해서 대단찮게 여겼으리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제사상에는 명태찜과 명태탕이 반드시 올라야 했다니 상당히 대우를 받았던 셈이다. 그래서인지 요즘도 북어포는 제사상 차례상에 빠지지 않고 오른다.

▷그렇게 흔하던 동해의 명태가 요즘은 금값이다. 수온상승으로 씨가 말라 어쩌다 나오는 생태 한 마리 사려면 큰맘 먹어야 할 정도라고 한다. 지금 시장에 나와 있는 명태는 베링해 근처에서 잡아온 원양산이 대부분인데 그 맛이 동해 명태 같을 리 만무다. 그나마 러시아와의 어획쿼터 협상이 쉽지 않아 값이 지난해보다 껑충 뛰었다니 이쯤 되면 아예 금태(金太)라고 하는 게 낫지 않을까 싶다.

최화경 논설위원 bbchoi@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