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퇴퍼 전 장관이 생각난 것은 김명자(金明子) 환경부 장관이 33개월간의 재직 기간으로 국민의 정부 최장수 장관에 우리나라 최장수 여성 장관이라는 ‘기록’을 세웠다는 사실 때문이다. 33개월이면 만 3년도 안 되는 기간인데 우리나라에서는 최장수 장관에 속한다.
80년대 이후 장관의 평균 재임기간을 보면 전두환 정부 18.3개월, 노태우 정부 13.7개월에, 김영삼 정부는 11.6개월이었고 국민의 정부(지난해 9월 기준)는 평균 10.5개월을 기록했다. 우리나라 각료의 수명이 유달리 짧은 데는 이유가 있다. 문민정부나 국민의 정부에서 보듯이 임명 당시부터 인물 검증을 제대로 하지 않은 채 충성심이나 정실에 따라 낙점한 경우가 많은 데다 일단 임명해 놓고도 장관직을 제대로 수행할 권한을 주지 않는다. 대다수의 장관이 업무도 채 파악하기 전에 국정쇄신이나 민심수습이라는 모호한 이유로 쫓겨난다.
김 장관의 장수는 그가 과학자로서의 전문성을 갖춘 데다 조용하고 튀지 않는 처신, 은근한 조직 장악력, 여성 장관을 보호해야 한다는 사회적 분위기가 복합적으로 작용해 이루어졌다는 분석도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퇴퍼 전 장관의 경우처럼 장관을 자주 교체하지 않아야 훌륭한 장관이 나올 수 있다는 사실이다.
여성이 발붙이기 어려운 관료조직에서 김 장관의 장수는 분명 축하할 만한 일이다. 김 장관의 장수기록은 정치적 이유에 의한 잦은 각료 교체가 국가와 국민에게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다시 한번 보여주고 있다.
정성희기자 사회2부 shch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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