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선이라 산골짜기. 두 물 하나로 아우러지는 물목 둔치의 낮은 담장 한옥에서는 늦은 밤도 아랑곳 않고 정선아라리 가락이 흘러나왔다. 여관 옥산장과 한 마당을 쓰는 토속식당 ‘돌과 이야기’의 여주인 전옥매씨(67)가 부르는 구성진 아라리 가락. 그 앞에는 서울서 온 여행자 20여명이 모여 앉아 귀를 모으고 있었다.
동동주 한 사발에 황기넣고 달인 토종닭 백숙을 거뜬히 한 그릇 비우고 감자옹심도 뚝딱 해치운 도시사람들. 장석 바닥에 철푸덕 주저앉아 참숯화로 온기 끌어안고 저마다 고운 목소리내어 애닯은 아라리 곡조 배우는 이 밤. 맑은 밤하늘에는 별빛 총총하고 느릿한 아우라지 물길 위로는 달빛 은은한데. 기운달 사그러진 달빛은 정선장날 막차 놓친 구절리 할머니처럼 시름겨워 힘이 없다.
옥산장 전씨. 유홍준교수의 ‘우리문화 유산 답사기’에 나오는 ‘그’ 여관 ‘그’ 주인. 아우라지 찾아든 유교수의 아라리 한곡조 듣자던 청에 끝내 화답못한 것을 후회하던 전씨는 후에 정선아라리를 전수, 이제는 아우라지 찾아오는 여행자를 모아 놓고 두런두런 지난 이야기와 함께 구성진 아라리 가락을 풀어내고 있다. 평생 모은 귀한 수석이 가득한 ‘돌과 이야기’의 방안에서 아우라지 뱃사공과 싸리골 처녀의 못다 이룬 사랑이야기도 들려주면서….
고려초 감옥이나 다름없던 이 곳 정선 산골짝에 유배됐던 선비들. 그들이 불렀을 아라리(‘내 마음 누가 알아주리오’라는 뜻으로 풀이)는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안타까움에 다름아닐 터. 그런 탓일까. 아우라지에서 비로소 강을 이룬 물줄기(조양강)는 거친 산과 깊은 골을 이리저리 휘몰더니 드디어 한 골짜기에서는 한반도를 빼어닮은 비경을 빚어냈다. 자연의 조화란 참….
그 기묘한 지형은 상정바위(해발 1006m·정선군 북평면 문곡리)에 올라야 올곳이 보인다. 3년전 우연히 발견됐으니 본 이는 물론 아는 이마저 많지 않다. 강변에서 물을 등지고 골짜기에 들어서니 등산로 초입에 통나무집 세 채가 나란히 보였다. 주인은 5년전 정착한 서울내기 김호석(53) 전영숙씨(47)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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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면 촛불켜고, 낮에는 머루 다래 따며 가끔 찾아오는 야생동물 바라보며 지내는 맛도 좋지요.” 전기가 없는 이 곳에서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이들. 지난 가을 지은 통나무산장이 준공허가만 받으면 ‘전기없는 산장’에서 진한 자연체험도 할 수 있게 될 것 같다.
새콤한 모과차 한 잔 얻어 마신후 상정바위를 향해 올랐다. 산길은 가파라 오르던 한시간 반 내내 숨이 턱에 찼지만 조양강 물길에 감싸인 물도리동 윤곽은 오를수록 분명해져 힘든줄 몰랐다. 정상 15분전. 제1전망대에 서니 비로소 그 모습이 한 눈에 쏙 들어오면서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이제 막 움 트기 시작한 철쭉군락을 지나니 정상의 상정바위 바로 밑. 바위에 올라 서자 그 모습은 더욱 분명했다. 중국국경쯤에는 42번 국도가, 반도 중간을 횡단하는 터널(정선선 철로)은 휴전선인 셈. 조양강 맑은 물은 서해와 동해였고 불쑥 솟은 반도의 상록수림과 가파른 산악은 우리땅 그 모습 그대로였다.
하산길. 철쭉군락 아래서 동박나무를 보았다. 4, 5월 피는 빨간 꽃 뒤에 맺히는 열매 주워 고운 머리 감았을 아우라지처녀가 생각났다. 싸리골 올동박이 다 떨어지도록 돌아오지 않던 뗏군총각을 기다리던 시골처녀. 지금은 아우라지 강변에서 조각되어 기다리고 있다.
▼식후경/감자옹심이 콧등치기 국수
“우리 딸이 넷인데 어디 좋은 총각있으면 좀 소개시켜 줘요.”
정선읍내에서 ‘감자옹심이 콧등치기 국수’를 내는 유일한 곳 ‘이모네 식당’. 안연호(62) 김선자씨(60) 주인부부는 국수를 장만하며 내내 딸자랑 겸해 사윗감 구해달라는 말을 연거푸 했다. 가족사진을 보니 딸이 모두 미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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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 넷 예쁘게 잘 키워낸 부모 손으로 직접 만든 이 이름 희한한 국수. 과연 맛은 어떨지. 15분쯤 지나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국수가 큰 대접에 담겨 나왔다. 거무틔틔한 메밀 칼국수가락에 하얀 감자녹말 수제비가 풀처럼 걸죽한 국물에 담겨 나오는 이 국수. 메밀에 감자맛이 듬뿍 들었으니 그 깊은 맛은 밀가루 칼국수 보다 한 수 위였다.
국수를 먹으며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질문 하나. 하필이면 ‘콧등치기’일까. “메밀은 밀가루와 달리 끈기가 없어 면가닥을 얇게 할 수 없어요. 그러다보니 면발이 굵고 파들파들해 후루룩하고 들이키다 보면 국수 꼬랑지가 콧등을 치기 일쑤지요.” 감자옹심이는 수제비쯤으로 보면 된다. 갈아낸 감자를 물에 앉혀 앙금을 건져낸 뒤 반죽해 떼어 넣는다고. 동그란 새알(옹심이)이 제격이나 종업원이 없다보니 일손이 부족해 수제비처럼 떼어 넣는다고했다.
종업원은 안보이고 주방은 김씨, 홀은 안씨, 밤새 감자깍기는 부부공동의 몫이다. 국수는 주문 즉시 끓인다. 단체손님 들이닥쳐도 마찬가지다. 국수도 국수지만 곁다리로 내는 동치미 김장김치 갓김치 깍두기도 내력을 알면 맛이 훨씬 더하다. 배추 무 모두 농약 안치고 직접 키워 낸 것이고 메밀은 이 고장것을 쓴다. 고춧가루 역시 직접 말린 태양초. 그러나 진짜 비결은 산수경계 좋은 정선 물맛이라고 했다.
국수 4000원. 설 추석 집안경삿날 외에는 연중무휴(오전 10시∼오후8시). 정선읍내 정선등기소 앞. 033-562-9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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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정보
▽찾아가기 ①영동고속도로/진부IC∼33번지방도∼나전교삼거리∼42번국도(나전방향 3.7㎞)∼굴다리(정선선철교)/우회전(상정바위 안내판·콘크리트포장도 2㎞)∼황토민박주차장(비포장 300m)∼김호석씨 통나무산장 ②정선읍내(정선2교사거리)∼42번국도(나전방향 3.7㎞)∼반점재(1.8㎞)∼굴다리(철교)/우회전. ▽숙박안내(033) △김호석씨(숙박은 4월 이후) 011-366-0042 △황토민박 563-5713 △옥산장·돌과 이야기(www.oksanjang.pe.kr) 562-0739▽정선아리랑 △정선아리랑 전수관 560-2225 △‘정선아라리 창극’ 무료공연(오후 4시반∼5시10분)〓4∼12월 정선장날(2·7장)에만 문예회관에서. 정선군청(www.jeongseon.kangwon.kr) 관광안내 560-2365, 2369 ▽유의사항 △상정바위 트레킹〓등산화 방풍의 필수. 날씨 좋은 날 올라야 볼 수 있으니 기상예보를 보고 떠나자. 5월말∼6월초 철쭉 만개 예상 △주차〓황토민박앞 주차장.
▼함께 떠나요
승우여행사(www.swtour.co.kr)는 옥산장(1박)에서 감자옹심이를 맛보고 전옥매여사의 정선아라리를 듣고 정선선 꼬마열차로 정선에 가서 장터를 둘러 본 뒤 정선아라리 창극공연까지 관람하는 상정바위 트레킹 패키지(1박2일·철도왕복)를 판매중. 26일과 4월 1, 6일 출발, 10만5000원. 오장폭포∼항골∼화암동굴도 포함. 당일 버스패키지(26일, 4월 2일 출발)도 있다. 2만8000원. 02-720-8311
정선〓조성하 기자 summ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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